법원의 부모성 조합 개명신청 기각에 대한 논평
법원의 부모성 조합 개명신청 기각에 대한 논평
최근(3월 6일) 서울남부지법은 ‘○○’이라는 이름을 ‘최○○’으로 개명하려는 신청을 기각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로 법원은 “우리나라의 성씨 중 ‘노최’씨가 없으므로, 신청인은 이름을 부를 때 성명을 함께 부르지 않는 한 최○○으로 불리는 것이 맞다. 이렇게 부르면 신청인의 성이 최씨인지 노씨인지 쉽게 알 수 없고, 따라서 ...(중략)... 주위에서의 놀림을 받아야 한다. 개명은 전적으로 부모의 뜻이지 신청인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신청인의 의사가 설령 포함되었다고 해도 신청인은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나이가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 울산지법은 자녀의 성과 본 변경신청을 허가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성·본이 변경되길 원하고 있는 점”을 주요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두 사건의 신청인이 비슷한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사건에서 신청인의 의사는 무시되고, 후자의 사건에서 신청인의 의사는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판결의 기저에는 ‘부모 성을 함께 쓰는 것=놀림을 받는 것=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 효용성은 차치하고라도, 1990년대 말 호주제 폐지운동 이래로 부모 성 함께 쓰기는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일상적 실천과 캠페인이 되었다. 최근에는 비록 정식 개명 절차는 거치지 않았어도 일상생활에서 부모 성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교적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실천이 법원의 눈에는 한낱 어린이들의 ‘놀림감’으로 비친다는 말인가?
판결문은 또한 “양성평등은 이름과 같은 형식적인 것보다는 자라나는 신청인에게 행동으로 양성평등의 모범을 보임과 함께 신청인에게 그와 같은 확고한 인식을 가지도록 줄기차게 훈육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헌법에 명시된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의 가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은 호주제에 대해서도 “호주제와 같은 형식적인 것보다는 행동으로 양성평등을 모범을 보이라”고 했을 것인지 궁금하다. 혹시 이 같은 입장이야말로 “(성평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도록 줄기차게 훈육”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판결의 표면적 근거인 ‘자녀의 복리’보다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부계중심주의라고밖에 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기존의 아버지 성 중심주의에서 미약하나마 어머니의 성도 쓸 수 있는 시대를 엶으로써 부계/부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장차 법원의 판결 없이도 부/모의 성을 선택해 사용할 수도 있는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성평등 사회에 걸맞은 법원의 입장변화를 촉구한다.
2008년 3월 10일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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