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나체사진’ 유포 무죄 판결, 그러나 죄는 있다
[논평] ‘나체사진’ 유포 무죄 판결, 그러나 죄는 있다
11월 7일 기사화 된 ‘동의하에 찍은 나체사진은 유포하더라도 무죄’가 된다는 판결을 접하며 당황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법이라는 것이 잘못한 사람을 모두 처벌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주는 한편 이 판결이 기사화 되는 과정에서의 ‘나체사진 유포가 무죄’라는 기사제목은 사이버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본 성폭력상담소에는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폭력에 대한 상담이 늘고 있다. 여기에는 몰래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 뿐 아니라 동의하에 촬영한 것이지만 이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이 포함된다. 공공장소에서 무작위로 촬영되는 촬영물 뿐 아니라 친밀한 관계에서 찍은 촬영물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고, 이때 촬영된 ‘몰래카메라’는 갈취, 강간, 스토킹 등 여타의 다른 범죄에 활용되고 있다. 단회의 피해로 그치기도 하지만 피해가 장기화 되기도 하여 피해자는 일상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몰래카메라 피해’는 더 이상 의사에 반해 촬영된 것만이 아니다. 동의하에 촬영된 결과물일지라도 동의 없이 유포되었다면 그 또한 몰래카메라로 인한 피해로 보는 것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1. 법조항을 잘못 해석한 판결이 아니라면 현행법은 바뀌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알몸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로 보내고 그 이후 폭행과 협박을 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3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아래 조항 참조)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폭행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을 확정하였다.
제 13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 ․ 판매 ․ 임대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 ․ 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재판부는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이라는 조항을 충실히 해석하여 ‘동의하여 촬영된 촬영물’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법의 그물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가해자를 바라보며 국민들이 얼마나 큰 허탈감을 느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의하에 촬영된 촬영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포되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면 처벌이 될 수 있도록 법률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2. ‘동의’는 누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한 언론사에 따르면 유죄판결을 내렸던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당시 이씨가 바지를 올리려는 등 촬영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사진을 전송한 뒤에도 상당 기간 친분을 유지했던 것을 고려하면 강압적으로 이 사진을 찍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2심 재판부는 촬영 당시 피해자가 동의 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동의’는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본 상담소는 상담과정에서 피해자를 속여서 촬영 하는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연인관계에서 개인소장을 목적으로 찍은 촬영물을 다른 사람에게 유포한다면 그것은 과연 동의하에 촬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엄밀히 말해 개인소장을 동의한 것이지 유포를 동의한 것은 아니다. 동의했던 조건이 달라진다면 이는 ‘의사에 반한 촬영물’로 해석해야 한다.
더불어 촬영물의 내용만으로 촬영 동의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위계적인 상황에서 촬영이 이뤄졌을 경우, 이러한 맥락은 촬영물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동의’를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기준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남기고 있다.
3. 판결에 대한 분석과 비판적 시각 없이 단순히 ‘무죄’라는 제목만으로 보도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판결이 기사화 되는 과정에서 언론의 책임감 없는 보도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법률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기사들은 이번 사건이 갖는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한 채 판결의 요지만을 전달하고 있다. 성폭력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비판적인 시각이나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물며 이번 사건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 아니더라도 명예훼손, 정보통신 관련 법률로도 처벌 가능성을 검토 해 볼 수 있다. 기사에서 단순히 알리고 있는 것처럼 동의하에 촬영한 촬영물에 대한 유포 행위가 그저 ‘무죄’라고만 언급하고 넘어가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최소한 언론이 잘못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재생산 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몰래카메라 협박과 유포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판결이 미칠 사회적 파급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나체사진’ 유포와 이를 빌미로 한 협박이 비일비재한 현실을 반영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1월 9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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