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모람활짝_분노의 민우회 회원가입: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모람활짝
분노의 민우회 회원가입: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이편(이지원)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회원팀 | 점잔 빼는 안경잡이. 보기와 다를 수 있습니다.
아악, 해킹이다! …아, 아닌가?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출근하자마자 신입회원 감사전화를 드리기 위해 어제 가입하신 분들을 확인하던 회원팀 활동가들 앞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신입회원이 43명? 월요일 오전의 피로가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죠. 평소 같으면 아무리 많아도 다섯 명, 대부분 두세 명이 가입하는 게 보통이었으니 말입니다. 해킹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며 한 명 한 명 확인하던 중,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건 진짜다!
사상검증의 시대, 반사회단체라는 이름의 낙인
3월 26일 IMC게임즈의 여성 원화가가 SNS 개인계정으로 여성단체를 팔로우하고 페미니즘 포스팅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메갈’로 지목되며 남성 게임 이용자들에 의해 사이버불링의 표적이 되자,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는 직접 해당 여성 게임 원화가와 면담한 내용을 게시했습니다. ‘사회적 분열과 증오를 야기하는 반사회적인 혐오 논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방지와 대응이 필요’하기에 이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히며, 그는 자신의 직원이자 창작자인 여성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여성민우회, 페미디아 같은 계정은 왜 팔로우 했나요?”
이 사건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트위터 등지에서는 #게임계_내_사상검증OUT, #넥슨_민우회_사상검증 이라는 해시태그가 돌았고, 졸지에 반사회사상의 주범으로 언급된 민우회에 가입함으로써 연대하자는 움직임이 촉발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정황을 듣던 중에도 회원가입 러시는 지속되어, 그 주중에만 200명이 넘는 분들이 민우회에 가입했습니다. 문자후원을 비롯해 일시후원을 하신 분들, 회비를 증액하신 분들을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죠.
연대하는 우리가 더 강하다. 이건 몰랐지?
민우회는 모든 신입회원 분들에게 전화를 걸어 민우회의 문화 및 회원활동을 안내하고 회원가입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회원팀 활동가 4명만으로는 모든 신입회원 분들께 다 전화를 돌릴 수 없어 전체 활동가들이 일을 분담하기로 했습니다.
페미력 충만한 분들과 통화를 하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도 많았습니다. 우선, 민우회 게임업계 지부를 만들어야겠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게임업계에서 가입하신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회원가입 감사전화를 드릴 때마다 가입하신 이유를 여쭤보는데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시겠다는 분들의 대답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 그 중 한 분의 답을 옮겨봅니다. “제가 게임업계 종사자인데, 이번 사상검증 사건을 보고 화가 나서 제 SNS에 글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을까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이 반사회단체라고 하는 곳에 후원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서 가입하게 됐습니다.”
또 한 번은 민우회 우편물 수신처를 직장으로 설정해주신 분이 있었어요. 노파심에 게임업계 직장으로 민우회 우편물이 가도 괜찮겠냐고 여쭤보자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호탕하게 웃으시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게임업계에서 태연하게 민우회 우편물을 받고, 주변 동료들과 나눠보실 모습을 상상하니 걱정했던 마음이 괜스레 민망해지고, 묘한 뿌듯함도 생겼습니다.
또, 페미니즘이 반사회적 사상? 웃기시네! 하며 가입하신 분들도 정말 많았어요. 한 활동가가 신입회원 감사전화를 드리며 “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입니다.”라고 인사했더니, “반사회단체 맞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와서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전화를 건 활동가와 전화 받은 회원 모두 이번 사상검증 사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한참 통화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이 반사회적 사상이고, 민우회는 반사회적 단체라는 낙인을 찍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며 부정하고 설득하는 대신 “네 맘대로 생각해. 우린 우리 길을 간다.”라는 마음을 먹는 것. 우리는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죠.
우리는 어쩌면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사상검증의 목표물이 된 시대에, 각자의 공간에서 외따로 존재했던 우리가 서로 공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장에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요. 사건이 있은 이후 처음 맞는 신입회원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사연들이 넘쳐났습니다. 게임업계에서 종사하시다가 이번 사상검증 사건을 계기로 가입하고 세미나에까지 오게 되셨다는 분, 주변 사람들 중 자신만 페미니스트인 것 같아 외로웠고 페미니즘으로 이야기 나눌 친구를 만나고 싶어 오셨다는 분, 인터넷으로만 페미니즘을 접하고 더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오셨다는 분 등등. 직업도 삶의 조건도 모두 달랐지만 페미니스트를 만나고 싶었다는 마음만큼은 다 같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세미나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답답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경청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민우회는 앞으로도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지치지 않을 수 있게끔 버팀목이 되어줄 서로를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힘을 받은 우리 자신이 각자의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그리하여 끝내 성차별적 구조를 지속시켜온 이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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