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_얼지 않는 말들 :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
기획소개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What would happen if one woman told the truth about her life? The world would split open.”
– 뮤리엘 루카이저(Muriel Rukeyser)
계속 말해왔지만 세상이 듣지 않던 목소리들. 그리하여 숨죽였던 목소리들.
끊임없이 자책하고 후회하던 고통의 시간을 뚫고 우리는 말한다. 이러한 세상은 터져야 마땅하다고.
서로의 용기가 된 여성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MeToo : 나도 말한다.
이제 세상은 듣지 않을 수 없다.
기획
얼지 않는 말들 :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
여는 민우회 편집팀
2018년 1월 말,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증언을 시작으로 미투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말하기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방도 여전히 거세다. 순수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를 구분하고, 아예 여성을 배제하겠다며 펜스 룰(Pence Rule)을 말한다. 여성들의 말하기를 가십거리로 소비하고 성차별·성폭력을 몇몇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여성들이 광장에 섰다. 2018년 3월 22일 아침부터 23일 저녁까지,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가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꽃샘추위와 바람이 거셌지만 10대부터 70대까지, 이주민, 청소년, 노동자, 활동가, 조력자, 학생, 기혼, 비혼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193명의 발언자들이 끊임없이 말하기를 이어갔다. 일상 곳곳에서의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증언했고, 사람들은 경청했다. 광장 한쪽에 설치된 25미터의 가벽에는 3백여 개의 대자보가 붙었다. 밤새 써내려간 증언들, 언 손으로 써내려간 증언들이 벽을 뒤덮었다.
#MeToo : 나도 말한다
“살면서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로 인해서 그래도 조금은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말하기를 위해서 밤을 새며 고민했습니다”
– 말하기 167번째
“모르는 아저씨가 삼촌친구라며 다가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살 여자아이가 성폭력을 당했다. 이십대의 삼촌도, 고등학생 사촌들도, 아버지의 직장동료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 미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든 아닌 사람들이든 우리는 피해자이며 생존자이다. 수없는 자살충동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그리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 가치 있는 사람들이다”
– 말하기 1번째
#서로의 용기
“5살 때부터 아버지에 의해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나만의 기억으로 없어지면 좋겠지만 그럼 저들의 잘못은 어디로 가나요. 잊을 수도 없었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한다고 합니다. 다들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들으십시오.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앞으로도 살아나갈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이런 나의 용기가 당신의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말하기 99번째
“한 평생을 바쳐 목소리 내고 맞서고 싸워야만 이 이야기를 다 털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울고, 웃고, 같은 말을 하는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세상과 싸울 것입니다. 각자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평등을 위해 함께 있다는 사실은 저를 더 강하게 합니다”
– 말하기 81번째
“피해자가 함구할 것을 강요하는 문화, 남성적 연대로 지지되어 오던 문화, 제 자신마저도 반성하고 경계해야 할 그 문화에 작은 흠집을 내고자 합니다.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변명하는 가해자들은 반성할 수 있는 이 소중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용기 있는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 말하기 175번째
높은 건물 사이의 청계광장은 유난히 바람이 거셌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은 말들’과 ‘벽을 울리는 사람들’이 광장에 있었다. 함께 절망했고 함께 희망을 기대했다. 대자보 벽에 따뜻한 꽃이 달리기도 하고, 진행 부스로 간식거리가 전달되기도 했다. 말하기는 끊이지 않았고, 현장으로 보내오는 증언의 글이 대독 신청란을 빼곡히 채워갔다.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얇은 가닥가닥 존재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미투라는 하나의 굵은 밧줄로 힘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분노 속에 살고 있지만, 이 분노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기울어진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말하기 26번째
“누군가의 평생의 상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철없던 시절의 실수’로 치부될 수 없습니다. 나는 꼭 살아남아 두고두고 당신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젠, 나를 망가트린 당신들이 두려워할 차례입니다.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 말하기 186번째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 자신의 가해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가해자. 그리고 방관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두려워하십시오. 지금 뒤에 숨어서 안전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이들, 두려워하십시오.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고, 말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말할 것입니다”
– 말하기 57번째
폭력의 상처를 말하려면 또 다른 상처를 입어야 한다. 말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기억을 되짚어야 하며 상처 입은 자신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삭제당하거나 사소하게 치부되고 의심받아왔던 경험은 말하기를 더욱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한다. 서로의 말하기에 응답하고 있다. 상처를 뚫고 나온 말들이 세상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 어떤 말보다 아프고, 강한 우리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3월 23일 19시부터는 청계광장에서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가 열렸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