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180818 : 페미가 도로를 점거한 날
기획
180818 : 페미가 도로를 점거한 날
부추(권박미숙) |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화가 많은 사람. 하지만 다정한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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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안희정 전 도지사 성폭력 사건 1심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사법부는 피의자에게 위력은 있지만 위력을 행사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분노가 터져나왔다. 판결 당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과 긴급 규탄 집회가 이어졌고 사흘 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외침이 도로를 점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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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가 안희정 무죄판결로 일주일 당겨져 8월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렸다.
1심 방청을 간 적이 있습니다. 김지은 님이 최후진술을 한 날입니다. 진술문을 들으며 그날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이 다 엉엉 울었습니다. 범행을 반복하던 중에도 공식석상에서 ‘미투’ 지지 발언을 하는 안희정을 보며, 그런 안희정이 지지받는 세상을 보며 느낀 공포와 참담함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과연 문제제기가 가능할까라는 두려움.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신을 움직이게 한 과정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그것이 결국 정의로움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판결이 났던 그 날은, 그렇게 눈물을 쏟게 하는 정의로움이, 그리고 그 정의로움에 동감하는 더 많은 마음들이, 판사라는 편파적 권력 앞에 얼마나 하찮게 취급당하는지를 봐야 했던 날이었습니다. 분통이 터져서 뭐라도 해야 하는 심정. 뭐라도 하기 위해 집회를 당겨 열게 되었고, 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여성의 자리는 이렇게 구석에 있어야 합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나눠져야 합니까. 모여있는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십시오. 흩어져서 누가 왔는지, 얼마나 왔는지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도를 점거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리를 점거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재판정의 어떤 자리도 허용되지 않았고, 국민으로서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한 나라에서, 거리에서 조차도 이렇게 구석에 몰려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얌전하게 시위할 수 없습니다.
- 180818 집회 발언 중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조마조마 했습니다. 집회 시작 시간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이렇게나 분통 터지는 심정으로 나온 거리인데, 별로 모이지도 않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자리가 찼고, 집회 허가가 났던 차선을 채우고도 남은 사람들이 인도까지 메웠습니다. 그때 무대에 오른 발언자가 이런 상황에서는 발언 할 수 없다며 경찰에게 도로를 열라고 요구했습니다. 차선을 열라는 함성들이 이어졌고, 계속됐고, 결국 폴리스라인 넘어 4차선 도로가 다 열렸습니다. 그때 저는 집회 스탭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요. 막 훌쩍거리면서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아는 분이 표정이 왜 그러냐고, “어디 안 좋으세요?” 하고 물으셔서, “넘 울컥해서요” 라고 대답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도로를 열라는 외침은 수분 간 계속됐다. 앉아있던 참여자 모두 일어나 차선을 넓히라 외쳤다.
편집팀 :
그날,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었나요?
판결문을 한 대목씩 큰 소리로 읽으면서 찢어발기고 싶었습니다. 그 판결문은 판결 역사에 길이 남을, 어이를 잃게 하는, 뒷목을 잡게 하는 판결문이었는데요. 결론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 판결문이 여성운동 과정에서 지난한 세월 속에 어렵게 만들어진, 여성주의의 언어를 사용해서 그런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침해받지 않을 인권이라는 의지를 담아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그 말이 ‘피해자도 원했고 그렇다면 이건 연애’라는 프레임으로 범죄를 포장하려는 자들의 언어로 쓰인 것이지요. ‘모든 여성은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그러니까 위력에 의한 일로 보기 어렵다’라니. 도둑맞았다는 심정이 들더라고요. 그날 횃불을 들었는데요. 촛불로는 표현 안 되는 분노를 담아서요. 그 횃불로 뭐라도 태워야 했다면, 그 판결문을 태울걸 그랬습니다.
편집팀 :
거리에 선 페미, 필수 아이템이나 장비가 있을까요?
뭔가, 페미들의 결기와 힘과 센스를 함께 보여주면서도, 거리라는 공간을 무척 ‘힙’하게 느껴지게 하는 동시에 꽤나 소소하고 일상적이라 어쩐지 호감이 가는 그런 아이템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사실 주로 집회를 준비하는 입장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스탭 위치에서 실무적으로 필요한 것만 생각이 나네요. 필요한 아이템은 설치와 수거가 편리한 성능 좋은 무선 앰프. 집회 참석 인원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서 앰프를 적게 설치하면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회 내용 전달이 잘 안 되고, 상황을 봐서 현장에서 바로 설치하기에는 전원을 끌어오기 어렵거나 뒤쪽까지 연장할 수 있는 전선이 부족한 상황 등등 복잡한 과정이 있어서 타이밍 맞게 설치하기가 어렵거든요. 행진 때 함께 구호를 외치기 위해 필요한 확성기도 많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음… 이런 장비들을 갖추려면 아무래도 가장 필요한 아이템은 페미집회나 여성단체에 대한 후원...?
행진 후 밤늦게까지 2부 집회가 이어졌다. 함께 박살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편파수사/편파판결/피해자다움/남성연대/강간문화/성폭력/꽃뱀/2차피해/명예훼손’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해서 너무나 힘이 났습니다. 안 그랬으면 화병으로 내내 잠 못 잘 뻔했습니다. 그날의 집회는 끝났지만 안희정 사건은 2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든 항소가 예상되니 3심까지도 가겠지요. 긴 시간이 될 것입니다.
2018년에 ‘미투’가 있었다면 25년 전, 1993년에는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최초로 고발된 사건이었어요. 민사손해배상 1심에서 가해교수에게 3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때 ‘이제는 직장에서 눈빛만 보내도 3천만 원’ 운운하며 엄청난 백래시가 쏟아졌어요. 그 사건의 3심 결과는 5년 뒤인
1998년에 나왔습니다. 최종 판결 결과는 고작 5백만 원 배상. 하지만 그 5년 사이에 사람들도 언론도 그 사건을 잊어갔어요. 갑자기 25년 전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쨌든 긴 싸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잘 먹고, 잘 자고, 많이 웃으면서, 긴 싸움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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