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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이야기2>성폭행한 과장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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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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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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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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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131
일터이야기 2
성폭행한 과장을 물리치다
의료보험조합 여직원
어느 날 관리과에 근무하는 남직원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게 질문을 하였다.
"000씨, 요즘 여직원들에게 무슨 일 있다면서요?"
"아니요, 왜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오히려 되물었다.
"아니요. 그냥 소문이 그래서요."
관리과 직원은 아무일 아니라는 것처럼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관리과 직원은 결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밖으로 불러내 진지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000과장님이 지난번처럼 또 일용직 여직원에게 그랬대요."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또라니, 가슴에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마음을 진정하고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평소 친하게 지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전대요.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000과장님이 이번에도 모 일용직을 또 그랬대요. 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이번 일로 그 과장을 파면시킬 수는 없나요?"
그 사람은 일단 신중을 기하자며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나대로 당사자를 만나 상세히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설득하기로 했다.
3개월전 비가 오는 어느 날 퇴근하던 여직원은 우산이 없어 비가 조금 그치기를 기다리다 계단에서 과장을 만났다. 과장은 우산이 없으니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것이다. 몇번을 사양하다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의 친구인 과장을 믿고 차를 탔는데 중간 정도 가서 갑자기 차를 인적이 없는 도로변에 세우더니 얘기 좀 하고 가자는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위치도 제대로 모르고 사람도 없는 도로에서 내리기가 무서워 과장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며 집에 가자고 하니, 갑자기 손을 덥석 잡으며 너를 여자로 보기 때문에 이런다며 다시 손이 가슴으로 오는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자신을 방어하며 여직원은 울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다. 다행히 정신이 돌아온 과장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말고 혹시 자신을 따로 만나고 싶으면, 메모지를 책상에 놓으라고 말하면서 집앞 골목에 내려주고 갔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여직원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려는 중이었다. 나는 그 여직원을 만나 '이대로 그만두어서는 안되며 과장이 자신의 죄도 모른 채 저렇게 철면피로 살아가는데 우린 저 사람을 이 직장에서 쫓아내야 하며,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건 000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자를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는 저 사람을 그냥 두면 또 제2의 000씨가 나올 것이다'며 설득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 여직원은 이 일로 무엇보다 아버지 사업에 타격이 갈까봐 걱정이 됐고 또 남직원들에게 여자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일주일간을 설득한 결과, 피해 여직원에게서 만약을 대비한 진술서를 받은 후 나이순으로 여직원 6명을 대표로 뽑았다. 우리는 과장님의 사직을 요구하기로 하고 이를 부정하거나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면 대외적인 모든 방법을 이용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결의문을 작성하여 전 여직원의 서명을 비밀리에 받아냈다. 다음으로 여직원 대표 6인은 과장님과 면담을 신청해 결의문을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감히 여직원들이 자신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했던 과장은 결의문을 보더니 얼굴이 붉어지며 성폭행이 무어냐고 빈정댔다. 우리는 과장이 모 여직원에게 행했던 그러한 행동들이 성폭행이며, 성희롱적인 발언을 비롯하여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접촉을 가하는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된다는 반격을 하며 1시간이 넘게 면담을 주도해 나갔다.
문제는 과장이 자신의 그런 행동에 대하여 잘못됐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도덕적인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과장의 주변에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여자들과 즐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있어도 누구 하나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자신은 여직원의 가슴 한번 만졌다고 사직하라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화내는 것도 너무나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장의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는 과장과 같이 근무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과장은 사직하겠다고 화를 내며 결의문을 찢고 우리에게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면서 나가버렸다. 그러나 과장은 우리와의 약속을 어기고 남직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자신을 위한 구명운동을 벌였다. 관리자를 비롯하여 남자대리들과 남직원들은 여직원들을 불러 너무 한다는 둥 독하다는 둥 우리를 설득하려 했지만 남직원들의 그러한 행동은 우리를 더욱더 의식화시킬 뿐이었다.
우리는 과장님을 다시 만나 보건복지부와 여성단체 그리고 노동조합에 이 사실을 알리고 대외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였고 다시 추진해 나갔다. 결국 과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우리가 정한 기일안에 떠나기 위해 출근해서 결재만 하고 옮길 직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어찌보면 과장님도 여자를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이 사회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을 쓸 시점에는 사건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필자께서는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갈 것을 우려하여 이름과 사진을 빼 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글을 써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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