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아홉 개의 시선_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아홉 개의 시선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도담(김은지) |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
사무실에서 오후 3시만 되면 “행복해지고 싶다!”를 외치고 있어요. 한숨이 조금 줄었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왜 이렇게 바쁘지?” 입버릇처럼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사실 올해만 바쁜 건 아니었다. 광주지역에서 민우회의 입지가 점점 넓어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일은 점점 밀려들어왔다. 그렇다. 사실 우린 매년 더 바빠지고 있었다.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부족한 인원, 쉼 없이 계속되는 활동, 누적되는 피로감, 예민하게 날이 선 일상의 연속, 소통의 부재와 갈등으로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던 활동가는 말해도 바뀌지 않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문제제기한 내용에 대해 해결하려고 했던 활동가는 나름대로 노력한 상황에 대해 말했다. 각자가 놓여있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던 활동가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외부적으로는 많은 영역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도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고, 어디쯤 왔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한 주에 한 번씩 활동가들이 모여 ‘조직문화 스트레칭’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조직문화 스트레칭? 조직문화 스트레스!
광주여성민우회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나이, 직급, 연차와 상관없이 서로를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가장 나이가 어린 활동가였기 때문에 별칭으로만 부르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한동안 별칭에 ‘쌤’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이상한 방식으로 활동가를 불렀다. 지금은 별칭을 부르는 문화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나이에 따른 별도의 호칭을 붙이는 것이 어색해졌지만.
이런 별칭을 부르는 문화는 보다 더 위계적인 다른 조직보다는 훨씬 평등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것에 속아 ‘우리는 평등하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직문화 스트레칭 시간에 “회의 시간에 앞에 말한 사람한테 의견이 이미 나와 버려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발언량에 차이가 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수준이 드러날까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안건에 대해 의견을 먼저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많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업에 대해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업무만 맡겨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의사결정을 빨리 내려야 할 때 누군가의 의견은 소외”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것, 당연한 것,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공유가 되지 않은 채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불만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활동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쌓인 친밀감으로 “조언을 못 하겠다. 관계가 불편해질까봐”, “갈등이 분명 존재하는데도드러나 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조직문화 스트레칭 시간을 통해 ‘우리는 평등한 조직이야’, ‘우리는 친해’라는 조직의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드러나야 할 것이 드러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되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갱신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
업무에 치어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조직문화 스트레칭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회의시간에는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던 활동가들이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던 활동가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거나 연차가 낮은 활동가, 집행책임자가 아닌 활동가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3년 민우회 활동가가 되었던 당시의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같은 기구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나보다 연차가 높았거나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늘 권력이 낮은 사람이고 발언권이 없는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올해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신입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도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집행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생각에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개개인 활동가가 서로의 상태와 상황에 대해 충분히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조직 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구조적인 고민하는 것 역시도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익숙하고 편한 조직문화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늘 상기하는 한편,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충분한 설명과 논의를 통해 공동의 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각자의 몫을 가지고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규칙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도!
소통은 스킬보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의지’라는 말이 가슴에 코옥 박혔다. - 봄봄
오래 활동한 사람에게는 정보 권력과 익숙함의 권력이라는 것이 있다 - 아무
‘다른 사람의 언어를 훼손하지 않는 것’ - 줄비
무엇이 낯선 지에 대한 얘기는 자꾸 들어야 한다. - 도담
익숙한 것에 대한 논의, 설명이 중요하다! - 미지
‘조직문화 스트레칭’ 이후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 각자의 마음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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