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페미니즘을 가르치면 성폭력이 해결될 수 있을까?
[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페미니즘을 가르치면 성폭력이 해결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요즘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때가 없다. 아이가 자랄수록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느낀다. 온 마을이 합심하여 아이를 망치고 있는데, 보호자가, 교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승산 없는 싸움 같아 무력하다. 페미니즘 교육의 방법론이나 실제 교육 사례에 대한 강의와 원고 청탁을 종종 받지만, 요즘은 도저히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없어 대부분 거절하게 된다. 학교와 가정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치면 성착취 범죄가 해결될 수 있을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분노하고 해시태그를 달고 청원을 퍼 나르다, 아직은 작고 연약한 내 아이를 본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성별은 남성이다. 아직은 때 이른 걱정이겠거니 애써 여유를 가지려는데 운영자 중에 12세 남아가 있다는 뉴스를 본다. 고작 4년 후다. 어떻게 해야 여성을 사물이나 대상으로 멸시하는 혐오의 악습에서 너를 구할까. 어떻게 해야 최소한 방조자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게 너를 키울 수 있는 걸까.
교육에 매뉴얼이 있다면 엄청난 생각노동이 줄어들 것이다. 아이를 혼내놓고 내가 너무 심했는지 곱씹고 자책하는 일도, 혹은 엄격했어야 했는데 지나치게 너그러웠던 건 아닌지 불안해할 일도 없을 것이다. 교육이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이 확실한 일이라면 힘들어도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가 바로 보일테니 성취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정답 없는 무수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아이와 함께 길을 만들어 걷는 일이다. 그 길이 맞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교육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이자, 누구나 말을 얹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를 작심하고 범죄자로 키우려는 교사와 양육자가 어디 있을까. 저마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신념으로 최선을 다한다. 내가 경험한 동료 교사들은 대부분 교육에 열심이었다. 문제는 각자의 열심이 사회의 어떤 부조리와 폭력에 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이 학교 안팎에서 (사실 안에서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깥에서는 좀 있었다) 울려 퍼진 이후로, 나는 수많은 페미니스트 교사와 보호자들의 고민과 열정을 만났다. 3년이 지난 지금, 그중 대부분은 번아웃에 시달린다. 학교와 가정에서 실천에 박차를 가할수록 교사는 민원을, 보호자는 고립된 육아를 감내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교사가 아무리 학교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학교 바깥의 시민이 공명하여 국민청원이 올라가도 학교는 복지부동했다. 심지어 학생들이 교내성폭력을 고발하는 용기로 일어섰을 때도 학교는 가해교사를 옹호하고 가해 행위를 방조했을 뿐 자성하지 못했다.
만 7세는 기린의 목은 왜 긴지, 추워지면 모기는 다 어디로 가는지, 겨울이 끝나면 어떻게 다시 봄이 오는지를 궁금해 하는 때이다. 여성을 착취하고 돈을 벌며 이를 용인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이 아이에게 어떤 언어로 무슨 수로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가정에서 아이를 어떻게 더 잘 가르칠까, 학교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교육을 더 잘할까 등의 문제에 과몰입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면, 어느 한 교사나 보호자가 아이에게 사회의 무수한 혐오와 차별을 모두 설명하고 바로 가르칠 책임을 짊어져서는 안 되며, 짊어진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자연의 이치와 사회의 낯선 규칙을 하나씩 배워가는 어린 시기에 페미니즘 교육이란 무엇인가. 존중과 평등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나머지 페미니즘 교육은 사회의 몫이다. 존중과 평등을 해치는 시민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고 합당한 벌을 받는다는 것은 학교 밖에서만 배울 수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가담자의 전원 처벌과 신상 공개. 지금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겐 그것을 목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교육이다. 그러니 보다 시급한 교육의 대상은 어른들이다. 저열한 남성연대와 여성을 착취하고 거래하는 인습이 지금 여기서 확실히 끝났음을 목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가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없이 페미니즘 교육은 시작될 수조차 없다.
최현희
페미니스트 교사/
우울증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휴직 중이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운동과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챙기려던 계획은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24시간 휴식 없는 육아노동에 돌입했다. 양육이 힘든 것은 삶에서 나의 주도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지기 때문이다. 작은 인간의 생장과 성장을 돕기 위해 나의 삶을 한구석으로 미뤄놓아야 하는 데다가, 삶에 서툴지만 고집스러운 아이와 매일 힘겨루기를 하며 나의 밑바닥을 봐야 하는 육아는 자책과 우울에 빠져 패배하기 쉬운 매일의 싸움이다. 아이의 무지와 고집 때문에도 싸우고, 나의 편협함과 권위의식 때문에도 싸운다. 보통은 두 가지 모두일 때가 많다. 나 자신과, 세상과, 그리고 가끔은 아이와도 싸우면서 버티는 게 요즘 나의 일과이다. 때로는 잘 버티는 것도 연대일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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