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1.5℃를 위해 함께 가는 방법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영화 〈벌새〉 중
폭염과 혹한,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 수돗물에서 나온 유충,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마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대사를 떠올린다.
기후위기란 무엇일까?
기후위기와 페미니즘은 어떤 지점에서 만날까?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함께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1.5℃를 위해 함께 가는 방법
2050 탄소중립과 그린뉴딜과 나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고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건 진작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시급한 문제라는 건 (아주 오랫동안 알려온 사람들 덕분에) 비로소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후위기’, ‘기후재난’이라는 단어가 낯설었지만 일 년 사이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얼마 전인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30년 내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제로에 수렴시키겠다는 국정 목표를 공식화한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측정을 시작한 이래 (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지난해 배출한 온실가스는 7억 2천만 톤 정도로 매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청소년 기후위기 활동가들은 한국을 ‘기후악당 국가’라고 부른다.
오늘의 초상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럴수록 머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무튼 ‘2050년 탄소중립’을 한다고 했으니까. 자, 그럼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는 걸까? 대통령은 수소경제와 에너지전환, 그린뉴딜과 같은 키워드들을 말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게 뭘까? 수소경제가 발전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드나? 그렇다면 그 경제는 누가 어디서 발전시키는 걸까? 아직 내 스마트폰을 수소로 충전할 수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구에 사는 포유류이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기후악당 국가의 시민으로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친구와 함께 사는 30대 여성으로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 걸까? 문득 지금도 어떻게 살아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1.5℃를 향한 도전
어떤 사실은 관점을 뒤집는다. ‘2050 탄소중립’의 배경에는 2018년 발표된 ‘IPCC 1.5도 특별보고서’가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의 근거 자료를 생산하는 기구다.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보다 아래로 유지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3년 후 IPCC는 ‘1.5도 특별 보고서’를 발행해 현 상황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함을 알렸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가 2℃ 이상 상승하면 높은 확률로 전 세계 산호초의 99%가 사라지게 된다. 같은 조건에서 북극은 10년 내로 녹아 없어질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거대한 생태계의 변화는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연쇄작용들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가 아니라 1.5℃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를 목표로 역산해 봤을 때 적어도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에 도달할 만큼 빠르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는 목표가 도출된 것이다.
1.5℃라는 숫자는 우리가 세상을 평가하고 있던 관점을 오셀로 게임1 처럼 빠르게, 차례대로 뒤짚는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2050년 지구온도는 4℃ 이상 상승할 예정이다. 미래는 이제 더 이상 끝없이 앞으로 펼쳐져 있지 않은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더 빨리, 더 멀리 가는 일은 단기적으로는 성취지만 결국 파괴적이다.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후 이미 1℃ 이상 올랐다. (즉, 우리에겐 1.5도가 아니라 0.5도 정도가 남아있다) 우리가 발전으로 배워온 역사는 환경을 착취해 온 이면만큼 고스란히 낯설고 곤란한 미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일단 우리가 뽑은 선출직 대통령은 수소경제에 투자하고 위기에 능동적인 도전으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지금 필요한 도전은 그런 도전, 그러니까 대안으로 신산업을 개발해서 이전까지의 시장은 버리고 다음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또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기는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명확히 하고 그 경계 안에서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다. 예를 들자면 생산에서 소비, 사용, 폐기로 흘러가는 자원의 흐름을 생산에서 재사용·재생산의 순환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익숙한 경로를 벗어나야 하는 도전. 그리고 지금의 경로를 벗어나려면 일단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우리이기에 할 수 있는 것
방향의 재설정에 유용한 개념으로 ‘도넛 경제학’이 있다.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제안한 도넛 모양의 경제 모델로, 영원히 시장이 성장한다고 가정하는 경제학의 우상향 그래프 대신 동그란 도넛 그래프를 그리며 경제 전반을 설명한다. 도넛의 안쪽 원은 경제활동의 부족으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바깥쪽 원은 경제활동의 과잉으로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는 상황을 표시하며 성장이 아닌 균형을 모든 경제활동의 원칙으로 삼아야 함을 보여주는데, 내게는 1.5℃가 죄다 뒤집어 놓은 세계를 다시 재정렬 시켜주는 프레임워크로 느껴졌다. 우리가 살아왔던 경쟁과 승패의 세계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계 말이다.
낯선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때의 역량은 결국 바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찾게 된다. 그리고 1.5℃라는 목표 앞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역량이 있다. 예컨대 여성으로서 나는 한계를 보고 들으면서도 성장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는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다. 나와 내 동료들은 자원의 한계를 호혜와 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감각에 익숙하다. 차별과 위험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규제가 제약이 아니라 안전과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문제를 외주화하지 않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풀어나갈 줄 안다. 그리고 2050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어려운 문제는 수소경제가 대신 풀어줄 수 없는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 2050 탄소중립이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되는 데 크게 기여한 기후위기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면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라는 솔직한 질문으로 이 의제를 추동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늘 나는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넘어 나와 우리의 방식으로 답을 실행할 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이 상황을 야기한 발전과 솔루션과 비즈니스 모델들보다는 더 1.5℃에 가까운 해법일 것이다. 다가오는 2021년에는 우리의 답을 거침없이 연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1) 보드 게임의 한 종류이다. 두 명이 가로 세로 8칸의 판 위에서 한쪽은 검은색, 다른 한쪽은 흰색인 돌을 번갈아 놓으며 진행된다. 상대편의 말을 자기 말 사이에 놓이게 하여 자기 말의 색깔로 바꿔 가면서 승패를 결정한다.
백희원
❚서울시 청년허브 연구협력실장
기후위기, 저성장 시대 도시에서 일하고 학습하는 비혼 페미니스트로서 충실히 행동하며 충분히 행복하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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