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8월호 [새로운페이지]열심히 일한 당신, 함께 떠나자
[새로운 페이지]
열심히 일한 당신, 함께 떠나자
왕인순 ● 요가이완연구소 소장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여경鏡님의 원고 청탁에 선뜻 응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 일선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후배의 일거리 하나라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원고 청탁을 해본 적이 많았고, 그 때 흔쾌히 원고를 쓰겠다고 했던 이들은 내게 큰 힘과 격려가 되었으니까.
후배님들, 공감하시나요?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보람찬 시간들 - 여성노동자회 활동
나의 젊은 시절은 무척 단순해서 한우물이라고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책으로만 접했던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 공장에 들어갔고 공장을 나와서는 여성평우회에서 활동했고,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여노회) 창립멤버로서 1987년 3월 21일부터 여노회에서 활동했다. 사명감과 자부심, 성취감이 나를 활동가로 성장시킨 동력이었다. 참으로 많은 일을 원 없이 해보았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보람찼던 기간이었다. 무척이나 소심했던 내 성격은 매우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을 함께할 많은 자매들을 만났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고, (일과 육아를 포함해) 일상생활에서 대안적인 삶을 꿈꾸며 나름 노력했다. 당시 나는 뭘 하든 잘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자였고, 일을 좋아했고,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도 소중하게 여겼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여노회를 떠난 왕인순을 결코 생각할 수 없었고 왕인순은 곧, 여노회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내가 요가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한때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도 요가선생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하하.
나는 후배들이 건강하게 활동했으면 정말 좋겠다
나는 2002년 3월 20일까지 상근 활동을 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날은 여노회 활동을 시작한지 만 15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운명처럼 여노회 활동을 시작했고 운명처럼 마감했다. 나름 자기 조절을 잘한다고 자부했던 나는 더 이상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기호식품들을 모두 다 끊어야 했고, 작은 일도 스트레스로 경험하면서 심한 두통과 불면에 시달렸고 수렁에 빠지듯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일에 대한 집착과 미련 때문에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고, 그러다가 어린 딸을 두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일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내가 지금도 반성하는 것은 넘치게 일하는 조직 풍토를 만들어 놓고 병들어서 조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정말로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office yoga, partner yoga, 자애 명상 등 도움이 될만한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다. 여성 활동가들이 부르면 준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달려간다. 휴가기간에는 집중 수련도 함께한다. 수련회 제목은 ‘열심히 일한 당신, 왕언니와 함께 떠나자’ 지난 20년간 일하는 여성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해 나의 작은 힘을 보탰다면, 앞으로 20년간은 여성의 치유와 성장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 어떻게 이런 미션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신가요?
씩씩하고 아름다운 변신 - 여성운동가에서 요가선생으로
여노회 활동을 중단하고 다음 날부터 심신의 치유를 위한 여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성찰하기 시작했다. 치유의 여정에서 만난 종목이 요가였고, 요가수련을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6개월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선택했다. 그 당시 선택의 기준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2003년 9월, 늦깎이 학생 신분으로‘요가치료학’전공이 있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고 공부도 너무 재미있었고, 2009년 8월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나는 자칭 투잡이다. 제1 직업은 요가선생, 제2 직업은‘여성운동을 돕는 이’
주변에서는 내가 여노회 상근활동가로 복귀하지 못함에 무척 아쉬워했고, 또 나의 도전을 무척 신기해하기도 했다. 고인이 된 민우회 최명숙 前대표를 비롯한 많은 자매들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받았고, ‘인생을 이모작하네’라며 부러운 시선을 쏟아냈다. 한국여성재단을 통해서 우림필유 장학금을 받았고 학교의 성적장학금으로 석사과정 4학기 등록금을 해결했다. 박사과정일 때는 요가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았다. 주변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여노회를 위해 그토록 열정을 다 바쳐 일하더니 그 보상을 받는가보다’라고. 맞다, 절대 공감이다. 나는 여성운동 덕분에 용기를 갖고 모든 과정을 어려움 없이 잘 마쳤고, 조사연구사업을 했던 경험 덕분에 학위논문도 잘 썼다. NGO에서 갈고 닦은 수많은 경험들은 한 인간을 참으로 유능한 인재로 성장시키는 과정이었음을 깊이 실감했다.
요즘 나의 일상은 이렇다. 혼자 일하는 즐거움도 누리면서, 자매들과 함께 <여성건강과 치유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자활센터 참여자를 위해 요가를 안내하고 가끔 대학이나 공공기관에 가서 강의를 한다. 칼럼을 쓰면서 내가 공부한 보따리들을 풀어놓기도 한다. 내 친정인 여노회에서 호출하면 달려가고, 여러 단체들에서 일하는 후배들의 고충상담도 들어주고 나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나 변신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면 언제든 상담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왕인순 ● 나의 활동을 20년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온 이와
잘 생긴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서울여노 이사, 한국여노 전문위원으로
여노회와의 인연을 줄기차게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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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새로운 페이지>는 선배 여성운동가 혹은 누군가에게 듣는 인생의 또 다른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신설된 꼭지입니다.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누군가를 알고 있다거나 이야기 듣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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