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기획] 이제 그런 말은 하지 말기로 해
이제 그런 말은 하지 말기로 해
육진아(육육) • 대학생 주간지 기자
어긋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면 표라도 팔겠어
우리네 인생은 서로의 어긋난 역사를 견디고 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집안에서도 아버지와 언니의 역사가 다르기에 서로 다른 길을 가기도 한다. 아버지의 역사는 초등학교 시절 6.25를 겪고 5공화국 시대에 가장이 된 것이다. 반면 언니는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고등교육을 받고 대학 정치토론 동아리 마지막 학번으로 졸업했다. 두 사람은 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공포를 가졌고, 전혀 다른 희망을 가졌다.
그럼에도 선거 기간 중에 우리 집이 비교적 평화로울 수 있던 이유는, 피곤한 퇴근길에도 동전을 모아 노숙인 손바닥에 올려놓는 아버지, 사회적 고통에 예민한 언니, 두 사람이 비슷한 약자의 감수성을 가졌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아버지에게는 사회 생활의 고비였고, 언니에게는 사춘기의 정점이었던 IMF 경제위기를 함께 견딘 공동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이면 언니는 퇴직하신 아버지에게 열을 올리며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설파한다. 아버지에게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누구에게 투표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둘러 말하는 것이다. 그럼 아버지는 그냥 양보하시기는 싫으셔서 조건을 제시한다. 언니는 졸지에 표팔이가 되어 조건을 들어드리지만, 사회에서는 요원해 보이는 어긋난 역사의 대통합이 가정에서 이뤄졌다고나 할까? 아버지를 설득하는 전략이라고는 해도, 언니에게 어긋난 역사의 실체가 누군가의 얼굴을 외면하지 못함 인 것 같다. 1만 5천 원 때문에 8년 친구를 칼로 찌른 영등포 쪽방촌 사건이나 결식 아동의 아사, ‘박카스’ 여성노인의 성매매와 같은 가난의 얼굴인 것 같았다. 그래서 약 1년 전 취임 첫 업무를 영등포 쪽방촌에서 시작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기대에 미치지 않아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후,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발표되는 매우 도전적인 시정 계획에 출근 시간이 즐겁기까지 했다. 그러나 곧, 박원순시장의 집이 강남이고 시가가 얼마며 과거에 올바르지 않은 입장에서 변호를 맡았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나는 언니의 눈치를 살폈다. 과거 언니를 설레게 했던 몇 명 정치인들이 비슷한 비난을 받았을 때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덤덤히 말했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슬퍼하던 언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슬픔은 없었다. 언니는 마치 신문 기사 음성 서비스 같은 투로 박 시장의 재산 공개 내역이 어떻고, 당시 상황이 어땠고 등등을 얘기해줬다. 마무리 하는 말로 그의 꿈이 (인공천을 만들거나 디자인 도시를 만드는 등의)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과로사 하는 것이라 귀뜸 해줬다. 나는 언니의 희망에 괜히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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