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봄 [결혼과 비혼사이] 결혼합니다. 위로해 주세요!
결혼합니다. 위로해 주세요!
김현진(면진) 여는 민우회 회원, 편집이루미
여성주의자로서 결혼제도를 선택하여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현재의 결혼제도는 ‘가부장제의 종합엑기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왜 꼭 결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가장 먼저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결혼제도 밖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법적 보장을 하지 않고 있다. 두 부부만의 일이라면 굳이 결혼제도를 선택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에서 동거를 해도 무방하겠지만, 아이가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함으로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돌봄, 안전, 교육, 의료 등의 문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는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입양부모의 자격요건은 기본적으로 법적혼인부모로 규정되어 있다.) 결국 아이를 가지고 싶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결혼제도를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의 동거커플 아이들은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하며 살고 있겠지.
또 하나의 재테크?
‘혼테크’라는 말이 있다. 여성이 남성과의 합법적 결합인 결혼을 통해 경제적 신분상승과 노후안정을 도모하는 뜻이라 생각된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유지하고 성장하는 데 사회적 장애물이 있다 보니, 결혼이 또 하나의 재테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낭만적 사랑’에 기반 한 결혼만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 그런 결혼이 존재하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나의 경우는 파트너가 계속 공부를 하는 친구이고, 내가 경제생활을 하고 있어 혼테크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준비를 하며 쇼킹한 일이 일어났다. 지방에 살던 나는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아등바등 생계를 유지해왔고, 전세금대출을 받고 싶었지만, 신혼부부나 유자녀부부에게만 우선순위가 부여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월세방에서 자취를 하며 살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니 꽤 넒은 전세집이 떡하니 생겼다. 결혼을 통해 한순간에 전셋집으로 주거환경이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하니 참 허무했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유무와 상관없이 서울에서 작은 전셋집 정도는 가질 수 있는 사회여야하지 않을까. 복지혜택은 결혼하는 부부에게는 있지만 독신여성에게는 없다.
예단, 함, 폐백 여전히...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조선시대로 여러 번 시간여행을 한다. 파트너와 서로 형식적인 것은 다 생략하자고 백번 다짐했지만, ‘부모님의 섭섭함’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결국 ‘예단’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예단은 옛날에 시댁으로 팔려가는 신부가 의식주와 관련된 물건들을 시댁에 싸들고 가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신기한 것은 의식주를 상징하는 의복, 그릇·수저, 침구가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복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시대가 바뀌면서 시댁부모님의 취향을 잘 몰라 현금으로 대신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재미난 점은 ‘현금예단공식’이다. 신랑 쪽에서 집을 얻는데 든 비용의 10%를 현금예단으로 드리는 것이다. 그 기준보다 적으면 실례, 많으면 부담이 된다나. 그리고 예단을 드리고 나면 ‘꾸밈비와 함’이 신부 쪽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포함된 구성품은 신부가 시댁으로 올 때 예쁘게 꾸미고 오라는 의미에서 옷, 가방, 구두 등이 담긴다. 결혼식 당일에 하는 ‘폐백’도 시댁 가족과 친지들에게 신부가 새 식구로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의미라고 한다. 양가가 결국 예단과 함을 주고받았고 이제 폐백까지 하면, 난 진정 시댁으로 팔려가는 건가?
청첩장 너마저
청첩장이나 각종 인쇄물에는 아주 당연하게 신랑이름이 먼저, 신부이름이 나중에 들어간다. 새롭게 디자인하고 배치해서 제작하려면 제작비용이 두 배 가까이 든다. 큰 맘 먹고 새롭게 제작하려고 해도 웨딩업체나 제작업체에서는 귀찮다고 꺼려한다. 아니, 내 돈으로 내가 제작하겠다는데 왜들 그러시는지. 결혼준비를 하면서 나는 계속 ‘까다로운 신부, 특이한 신부’로 불리고 있다. 그나저나 내 파트너는 아무 노력 기울이지 않고 언제나 먼저 이름을 넣을 수 있으니 참 좋겠다. 미안한 표정으로 ‘신랑이라서 먼저가 아니라 가나다순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하는 파트너 덕에 웃음만 나올 뿐이다. (참고로 파트너는 강 씨, 나는 김 씨다. 에잇!)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식 입장순서는 우리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관계로, ‘신랑이 먼저, 신부가 나중에’ 공식을 깨고 둘이 나란히 입장하게 되었다.
그래도 대안적으로 만들어 가는 결혼
이처럼 결혼을 준비하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부분에서 여성주의자로서 분노 혹은 회의가 느껴진다. 그래도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정신없이 보내는 지금,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남기게 되어 참 다행이다. 기왕 하는 결혼이니까,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조금은 대안적인 결혼을 만들어보고 싶다.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고 비록 다리가 아프더라도, 나는 결혼식 전에 신부대기실에 꽃처럼 앉아있지 않고 입구에 서서 내 손님들을 맞을 테다. 그리고 3일 명절연휴 중 1.5일은 친정, 1.5일은 시댁에서 보낼 테다. 가사와 육아는 평등하게 분담할 테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성씨’를 당연하게 파트너 성씨로 쓰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할 테다. 나의 꿈은 내 딸의 손을 잡고 민우회에 놀러가는 것! 꿈을 이룰 수 있게, 늘 깨어있을 수 있게 여성주의자 동지들이 늘 곁에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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