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민우ing] 추적자가 쫓아서 좇으려 하는 것
[민우ing] 추적자가 쫓아서 좇으려 하는 것
이선미(썬)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추적자는 동의 없이 유포된 ‘나체사진, 성행위 동영상’ 피해의 확산을 막기 위해 파일공유사이트를 모니터링하여 유포된 파일을 찾아 삭제하고 가해의 증거를 수집하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기획단이다.
추적자는 B, M, P, T, W로 시작하는 다섯 개의 P2P사이트를 모니터링 했다. 유포된 성행위 촬영물이 담긴 게시물을 찾아내 삭제 요청을 하였다. 문제의 게시물을 신고하면 각 사이트 관리자는‘해당 콘텐츠는 삭제된 콘텐츠입니다’라는 문구를 띄우고 블라인드 처리, 삭제했음을 알린다. 신속한 조치, 그러나 모니터링을 재개하는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방금 전 삭제한 파일이 또 올라왔다. 지금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것인가. (분노의) 아웅!
피해를 사고파는 것
P2P사이트는 누구든지 게시물을 쉽게 업로드하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게시물(파일)을 업로드하는 사람은 ‘판매자’ 다운로드받는 사람은 ‘소비자’이다. 판매자는 자극적·선정적인 게시물명으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때 사용되는 단어는 ‘몰카, 유출, 유포’이고 ‘일반인, 여친’을 강조하여 지극히 사적인 비밀을 유포한다는 듯이 ‘성인’으로 분류된 카테고리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게시물들은 더 많은 소비자의 돈을 낚고자 ‘유포된 성행위 촬영물’을 표방한다. 이에 사람들은 게시물명과 실제 파일이 다른 경우인 소위 ‘낚인’ 경우엔 “낚였어요. 다운받지 마세요.”라며 친절을 베푼다. 그리곤 유포된 성행위 촬영물을 올린 판매자에겐 ‘님 감사요’라며 볼썽사나운 예의를 차린다. 다른 사람의 피해를 사고파는 것, 그저 호기심만 있을 뿐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않는 걸까?
다행히 아직은, 없다
모니터링 시 유포된 피해 파일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과정이 기막히게 화가 날 뿐이다. 회사명·이름·나이 심지어 학교에 학번까지 포함된 상세한 개인정보의 집합체인 파일명과 게시물명, ‘불쌍하다, 유명하지, 기다리던 거예요’등의 이미 유포된 피해 파일임을 인증해 주는 댓글들, 포털사이트에 회사나 학교 이름을 입력하면 문장완성이나 연관검색어로 피해 파일명이 나온다. 방금 삭제했던 파일이 또 올라온다. P2P사이트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 튀어나온다. 화가 난다. 그리고 불안하다. 내친김에 포털사이트에서 내 이름 석 자를 검색해본다. 다시 성을 떼고 이름만 입력한다. 이제 각 P2P로 가서 다시 반복한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은’없다. 그러나 여전히 개운치 않다. 어느 날 불쑥 여기저기서 내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전화가 온다
“헤어지자고 하니까 ‘너 얼굴 못 들고 다닐 걸’이라면서 사귈 때 찍었던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카톡이 왔어요.” 추적자 활동을 시작하고 받은 상담으로, 협박하는 상대의 작태가 가관이다. 헤어지자고 하자 성행위 촬영물을 빌미로 만날 것을 요구하는 전화와 문자, 카톡이 쉼 없이 온다. “전화를 안 받으면 유포한다는데 어쩌죠? 여기 연락하면 파일을 추적해서 삭제해주나요? 영원히 없애주나요?” 다급히 묻는다. 상담소를 찾은 기대와 추적자 활동의 실제(‘유포’된 파일 삭제)가 충돌한다. 협박 상황에서 쫓을 수 있는 파일은 없다. 파일을 원격으로 없앨 수 있는 기술 혹은 재능, 아니 무엇이든 가능하기만 하다면 협박의 수단이 되는 파일을 ‘영원히’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추적자에게는 유포되지 않은 파일을 삭제할 재간은 아직 없다.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 이에 협박상황에서 쫓아야 하는 것은 파일이 아닌 상대의 ‘협박’ 그 자체가 된다. 유포되지 않았기에 협박은 유효하다. 그러나 협박에 수긍하고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에 단호한 대응이 중요하다. 상대의 협박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할 테면 해봐’ 라는 식의 배짱이 절실하다. 그래야 중단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영원하지 않으며 변할 수 있다. 내 의지대로!
단호한 대응, 배짱을 부탁해
유포할거라는 협박에 ‘그래 유포해. 이 지질한 인간아.’라고 단박에 답할 수 있는 두둑하고 대찬 배짱을 만들어보자. 단언컨대, 배짱은 최고의 대응책이 되겠지만 갑자기 없던 것이 생겨나긴 어렵다. 물론 상담소에 전화(T.02-335-1858)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협박 상황에서 ‘맘대로 하라’며 단호히 버티기에는 실제 파일이 유포됐을 때의 피해의 심각성과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무력감이 엄습한다. 다양한 파일의 실시간 ‘공유’ 환경은 성행위 촬영물이 유포됐을 때 피해라는 인식보다는 그저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파일로만 읽힌 채 피해가 빠르게 확산되는 손쉬운 길을 열었다. 누군가의 피해를 확산하는 행위는 ‘공유’가 아니다. 유포된 피해를 소비하고 재유포하는 행동은 피해를 가능케 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은 응당 중단되어야 한다. 그래야 협박이 힘을 잃게 된다. 그래야 단호한 대응, 배짱도 당연해진다.
피해에 ‘공감’하면, 상황은 변한다
추적은 본디 사후약방문과 유사하다. 추적자는 이미 유포 피해가 발생한 파일을 삭제하는 사후 조치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는 상황을 피해 이전으로 되돌려 놓을 순 없기 때문에 무언가 때를 놓친 듯 보이겠지만 추적자의 추적 활동은 예방을 목표로 했다. 추적자는 P2P모니터링을 통해 아무리 삭제해도 다시 피해가 게시되는 답답한 상황을 목도했다. 게다가 모니터링조차 할 수 없는 사적 공간인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유포 피해의 확산은 어떻게 중단하고 예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성행위 촬영물이 동의 없이 유포되더라도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변화된 상황은 올 것이다. 그래서 추적자는 협박이 힘을 잃고, 더 이상 유포가 피해의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감’ 캠페인을 제안한다.
미덥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P2P와 모바일 메신저 사용을 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추적자는 제안한다. 이용자가 피해에 ‘공감’하고 스스로 ‘나는 절대 보지도 유포하지도 않겠다’는 다짐과 실천을 함께 하기를!
피해의 확산을 중단하기 위해 ‘공감’하는 마음을 확산하자.
상황은 변한다. 당신으로부터!
<공감을 위한 Tip. 할 수 있어요!>
☑ P2P사이트에서 유포된 피해 파일을 발견한다면?
각 게시물에는 ‘신고하기’라는 버튼이 있습니다.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 친구가 ‘혹시 그거 봤어? 유출된 XX'라며 카톡을 보낸다면?
친구를 신고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신고하지 않아도 ‘난 볼 생각 없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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