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기획] 동거냥들과의 인터뷰 "멍청한 개는 없다. 멍청한 주인이 있을 뿐"이란 말도 몰라?
[기획] 동거냥들과의 인터뷰
"멍청한 개는 없다. 멍청한 주인이 있을 뿐"이란 말도 몰라?
노재윤(재윤) 여는 민우회 회원
여는 민우회 회원 재윤님이 동거냥 시루와 머루를 인터뷰했어요. 재윤의 머릿속에서 진행된 가상인터뷰지만 시루와 머루가 어떤 성격인지 팍팍 느껴지네요. 재윤과 시루, 머루가 어떤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살짝 들여다볼까요?
집사 : 이렇게 함께 앉아서 얘기해보는 것도 오랜만이야. 오늘은 당신들 모녀와 허물없는 가족 간 대화의 시간을 좀 가져볼까 하는데….
시루 : 우리가 언제 가족이었고 언제 얘기 같은걸 한 적이 있었나. 어쨌든 해 봐.
머루 : 밥 줘요.
집사 : 일단 나는 저 소파만 보면 속상해. 이사 오면서 소파라는 걸 처음 들여 봤는데 당신들이 한 달 만에 중고로도 못 내놓을 걸레를 만들어놨잖아. 우리가 함께 산지도 벌써 8년이고 할퀴면서 적응한 세월이 있는데… 새로 산 소파 정도는 봐줄 줄 알았다고.
시루 : 글쎄, 집사의 실수는 우리와 자네를 동등한 소통을 나누는 관계로 착각한데 있는 것 같아. 1년이든 8년이든 우린 그냥 패브릭만 보면 뜯고 싶어 환장하는 고양이일 뿐이야. 자네는 밥과 간식을 주고 화장실을 관리하는 익숙한 냄새의 집사일 뿐이고.
머루 : 난 보고 배운 게 엄마밖에 없어서…밥 줘요.
집사 : 하긴 당신들은 엄밀하게는 소유권리와 부양의무를 가진 동물일 뿐이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는 순간부터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존재들이지. 그건 그렇고, 꽤 오래 같이 살았지만 난 아직도 고양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아무리 잠으로 인생을 보내는 고양이라지만 당신들은 어쩌면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있지?
시루 : 집사가 그렇잖아. ‘멍청한 개는 없다, 멍청한 주인이 있을 뿐’이란 말도 몰라? 우린 집에 오면 무기력하게 굴러다니는 집사를 보면서 자랐고, 우리 셋이 집안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서로 희번덕대는 것 밖에 없잖아?
집사 : 그래도 기억을 떠올려보면 난 난생 처음 당신들 종과 동거하기 시작했을 때 설레기도 하고 기대가 많았던 것 같아. 그때쯤 어딘가에 이런 식의 문장을 쓴 적이 있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다른 종이 가진 영적 배경과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사랑을 나눌까에 대한 관찰과 탐구의 여정이기도 하’…기는 개뿔. 바닥에 오줌이나 싸지 마.
시루 : 다 합당한 불만이 있어서야.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는 집사가 문제지. 그리고 집사의 개뿔 같은 소리처럼 반려동물에 대한 당신들 종의 이야기에는 겉만 그럴싸한 수사가 좀 많은 것 같아. 함께 살기 시작한 초창기에 집사가 굳이 나를 안아들고 모니터에 끼적인 말들 중엔 이런 오글대는 것도 있었어. “난 그녀가 고양이임을 어느 순간 잊게 될 거다. 나는 나의 말을 하고, 그녀는 그녀의 말을 한다. 서로 다르고 다양하고, 또 다른 목소리를 내고, 굳이 읽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눈을 마주치면 알 수 있고, 그렇게 뭉클대며 소통을 시작한다….” 그러고 8년이 지났는데 눈 마주치면 뭘 알겠던가? 집사의 오그라드는 표현 중 유일하게 맞는 말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뿐이야. 함께 사는데 필요한건 인내와 책임감이야. 소통은 노력이고 애정은 덤이지. 뭐 우리는 우리대로 특화된 애교 정도는 보여주겠지만, 원하는 대로 꼭 뭘 해 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마. 달리 반려동물이겠어.
집사 : 하긴 나도 그런 건 이제 잘 모르겠고, 지금은 그냥 당신들이 굴러다니는걸 보고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긴 해.
시루 : 내 딸이 눈에 밟힌다고 입양을 포기하고 5년 째 같이 살게 한 것도 집사의 선택이었지.
머루 : 응응, 밥 줘요.
집사 : 그나저나, 지금은 지지고 볶으면서 익숙하니까 잘 모르지만, 난 집안에서 부록처럼 붙어 다니던 당신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게 가끔 좀 두려워.
시루 : 딱히 별 일이 없다면 집사보다는 우리가 먼저 없어지겠지만, 그건 다른 종과 반려라는 이름으로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이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마. 난 이제 옛날처럼 단번에 냉장고 위로 뛰어올라가지 못할 만큼 나이 들었고 점점 시들해지겠지만, 그건 집사도 마찬가지야. 동거하는 동물을 거울삼아서 스스로도 볼 줄 알아야지.
집사 : 그래, 그럼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시루 : 이 대화 자체가 집사만의 판타지인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대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비비적대든 할퀴든 소통을 지속할 수는 있을 거야. 물론 그나마도 자주 어긋나는 소통이지.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집사를 부려먹는 일상에 충실하다 보면 나눌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냥 뒹굴대며 사는 우리를 통해 치유를 받든 도움을 받든, 그런 건 결국 집사의 몫이고.
집사 : 응, 고마워. 나도 사랑해(응?). 더 하고 싶은 말은 없고?
시루 : 이제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을 거니까 말 걸지 말고 그냥 놔둬.
머루 : 밥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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