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기획] 그래야 남은 시간, 투투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기획] 그래야 남은 시간, 투투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 동물권에 대한 고민
박김수진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경기도 원당의 한 분양업소에서 태어난 지 3개월째를 맞이한 투투를 만났다. 투투를 처음 본 그 날, 투투의 언니, 엄마, 아빠와도 눈인사를 나누었다. “두 마리 중에 아무거나 골라 가져가세요. 둘 다 몸이 약한 편인지만, 둘째가 더 약해요.”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에 더 약하다던 작은 강아지를 집어 들었다. 돈 5만원을 지불하고 그 집 문을 나섰다. 그냥,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개 한 마리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나는 정말 우리 투투를 사랑했고, 사랑한다. 나는 입이 짧은 투투를 위해서 투투의 입맛을 돋게 할 만한 웬 만한 시도들은 다 해봤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이고, 중간 중간 고기 간식을 사다 먹이고, 꽤 먼 거리였음에도 함께 걸어 출근도 했고, 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교에 함께 가서 학생회 친구들에게 맡기고 수업을 듣기도 했다. 투투가 혼자 좁은 나의 원룸에 오랜 시간 머물지 않도록 펫시터 역할을 해 줄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제주도를 제외한 국내 여행에는 꼭 투투와 동행했다. 나는 정말 우리 투투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렇게 사랑했고, 사랑한다.
‘불편한 마음’의 정체
투투와 함께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나는 개를 포함한 모든 인간 외 동물들에 대해 무식했다. 투투 덕분에 나는 개에게 슬픔, 기쁨, 불안, 즐거움, 행복, 불행 등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때리면 아파하고, 괴롭히면 괴로워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정도로 나는 무식했다. 그러다 ‘개인 투투가 즐거움과 고통을 아는 동물이라면 돼지, 소, 닭도 즐거움과 고통을 알겠구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평소 즐겨먹던 ‘고기’를 먹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뭔가를 더 알아보려고 시도를 했던 것은 아니고, 고기를 안 먹은 것도 아니다.
투투가 8살, 9살이던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구제역으로 인해 380만여 마리의 돼지, 소, 닭 등의 농장동물들이 생매장되었다. 그 시기에 나는 처음으로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 관해 생각이란 걸 해보기 시작했다. 투투 덕분에 ‘불편한 마음’에 종종 시달려 오던 나는 모호하기만 했던, 알고자 애쓰지 않았던 ‘불편한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동물권에 관한 많은 책을 사다 읽었고, 잔혹하여 보기 어렵다는 동물학대 동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으며, 동물권 및 동물보호 운동 단체들에 회원가입을 하였다. 공부 초기에는 돼지나 소와 같은 농장동물의 문제에 집중하였고, 이어서 모피동물, 실험동물, 전시동물, 오락동물 등으로 관심을 넓혀갔다. 그렇게 동물권에 관한 공부를 지속하던 중에 나의 관심은 투투에게로 이어졌다. 소위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이라 불리는 ‘개’라는 동물의 문제로 말이다. 나는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이라 불리는 개에 관해 수많은 질문들을 떠올렸고, 많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한 사랑일까
‘내가 투투를 무작정 빼앗아 온 것인데, 그때 투투의 엄마였던 그 개의 심정은 어땠을까?’, ‘투투의 언니였던 그 개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투투와 ‘동거’한다고 생각하는데, 투투 입장에서 보면 ‘납치’된 상태는 아닐까?', '입이 짧은 투투를 위해 이런저런 연구를 많이 해왔다지만, 온통 다양한 개 사료들과 캔 고기들뿐이었다. 어쩌다 투투는 개 사료와 개용 간식만, 그것도 내가 주는 대로만 먹어야 하는 팔자가 되었을까?', '나에게는 ‘함께’였던 산책과 여행이 정말 투투 입장에서도 ‘함께’였던 것일까?', '투투가 내게 ‘사랑’을 요구한 적이 있나?', '누구를 위한 ‘사랑’이었고, ‘사랑’일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나는 고통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개들의 꼬리를 이유 없이 자르고, 생길지 모를 질병을 예방한다며 성기를 자르고 들어내는 수술을 시켰다. 미용을 위해 귀를 자르고, 패션 소품인양 염색을 시키고, 짖는 것이 당연한 개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며 성대를 잘라냈다. 동물인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진리이듯, 동물인 개에게도 생로병사가 진리인데도 사람들은 개가 아프면 쉽게 치료를 포기하거나 버리기 일쑤였다.
사람은 개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 먹는 음식의 종류, 심지어 죽고 사는 시점까지 모든 것을 결정했다.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의 개에 관한 모든 선택‧결정권은 개가 아닌 사람에게 있었다. 불황을 모르는 사업으로 늘 거론되는 분야가 ‘애견산업’이었다. 애견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그만큼 버려지는 개들도 덩달아 폭발적으로 증가해 매해 12만 마리 이상의 개들이 버려지고 있었다. 버려진 개들의 대부분은 시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다가 ‘안락사’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살처분되거나 사설보호소의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다 죽었다. 사람들은 예쁘고 귀여운 종이 있는 강아지를 보면서 그 강아지들을 생산하기 위해 감금 사육된 상태에서 평생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다 개소주 재료로 생을 마감하는 번식장 안팎의 개들을 절대로 떠올리지 않았다. 이 모든, 개들에게 지옥일 애완동물 산업의 중심에 바로 내가 있었다. 버려진 개들을 입양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돈을 주고 별 고민 없이 개를 사 들고 왔던 내가, 꼬리 자르기와 중성화 수술을 밥 먹듯이 하는 동물병원의 주요 고객이 된 내가, 투투 먹이겠다고 돼지, 소, 닭 등 다른 동물의 이용과 구입을 당연시했던 내가 그 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끔찍했다.
그래야 남은 시간, 투투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투투는 11살이 되었다. 투투의 검고 진했던 아이라인과 입술라인은 없어졌다. 피부에는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했고, 발톱은 흰색으로 변했다. 위아래 앞니는 모두 빠졌고, 유선종양이 생겨 작은 수술을 앞두고 있다. 생로병사의 진리 앞에 투투 역시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나는 투투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투투의 친가족과 이름 모를 수많은 투투의 친견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투투 덕분에 알게 된 소, 돼지, 닭, 오리, 밍크, 동물원 동물들, 새우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인 나는 용서를 구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모질게 고통 받다가 죽어 간 수많은 동물들에게 참회하고, 그런 학대와 살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애쓰는 일뿐인 것 같다. 그래야 남은 시간, 투투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그래야 남은 시간, 투투가 덜 고통스러워 할 것만 같다. 이마저도 사람인 내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럽지만 말이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