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문화산책] 이효리의 40대가 기대되는 이유
[문화산책] 이효리의 40대가 기대되는 이유
최원진(눈사람)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회원팀 활동가
나는 이효리의 팬이다. 그냥 안방팬이 아니라 각종 공개방송과 녹화방송, 현장공연을 쫓아다니는 광팬이다. 그리고 팬덤 내에서 조금 특이한 출신성분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19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처럼 누군가의 첫사랑. 이기보다는 빠순이 안티들이 만들어낸 비난의 의미가 담긴 용어였으나, 어느 순간 “그래 나 빠순이다.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의미로 당사자들이 적극 차용해서 쓰게 되었음.
였다. 그런 나도 20대가 되었고, 오빠들의 군 입대를 기점으로 빠순심은 하향곡을 그렸다. 어쩔 수 없는 공백보다도 오빠들과 나 사이에 생긴 ‘사랑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간극’ 때문이었다.
군 제대 후 오빠들은 일명 ‘군필돌’이 되어 아이돌 이전에 대한민국의 남자임을, 남자 됨을 자랑스럽게 인정받았다. 그리고 조상⦁원조 아이돌+사장님, 이사님이라는 사회적 직함을 달고 사회비판 노래 대신 ‘예쁘고 어린 여성’이 이상형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남자가 되었다. 각종 토크쇼에 나와 과거의 팬덤과 연애사를 과시하고 현역아이돌에게 훈계도 둔다. 10대:아이돌⟶20대:해체⟶홀로서기⟶군대⟶30대:대중적 이미지 구축+사회적 지위(상징) 획득. 조금 비약하자면 이것이 바로 ‘(성공한)남성아이돌의 성장서사’다.
하지만 주민번호 2번을 부여받은 나는 그들과는 필연적으로 다른 현실에 놓여있다. 여성에게 있어 나이는 ‘남성의 나이듦’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끊임없이 여성임을 증명해야만 간신히 여성성(=사람)을 획득할 수 있는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고 결혼가능성조차 낮은, 예쁘지도 여성스럽지도 심지어 더 이상 어리지도 않은 어떤 여성들에게 산다는 것은 싸움과 협상, 좌절의 연속이다.
20대의 내가 과거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운동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효리 역시 채식을 하고 유기견을 입양하고 공장식 사육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팬이 된 것은 (혹자가 얘기하듯)그녀가 ‘의식과 개념 있는 여성’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성장서사’를 보여주었고, 그것이 동시대 여성들의 성장서사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효리는 예쁘기 때문에 핑클로 데뷔했고 이삼십대를 대중과 함께했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혹독해야만 했다. 어떤 여성이 예쁘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모든 이들이 공유할 때, 그 여성은 예쁘다는 것을 ‘현재형’으로 항상 증명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본인의 말대로 누가 봐도 가장 화려해 보이는 20대를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불안과 공허함에 시달리는 여성이기도 했다. 남성아이돌 출신에게는 데뷔연차가 중요하지만 여성아이돌 출신에게는 (원조긴 원조지만) ‘요정’식의 부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지고, ‘현재 나이’에 포커스가 집중된다. 그래서 수시로 ‘올해 서른(이나 되었는데)인데, 여전히 예쁠 수 있는 비결’ 따위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
효리는 그 안에서 싸우는 대신 자신만의 선과 룰을 찾아 돌파했고, 때론 실패하고 좌절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중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 지난한 과정은 솔로 1집 타이틀곡인 텐미닛에서 최근의 배드걸까지 음악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대한민국에서 서른다섯의 여성가수가 여전히 섹시할 수 있다는 것. 무대 위에선 빡세게 치장하지만 현실의 절망과 욕망 그 사이에 스스로가 놓여있음을 알고 있는 것. 결혼은 하지만 결혼식은 하지 않는 것. 그럼으로써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순 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 ‘다 괜찮다’고 여성들을 위로하고,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하냐’고 되묻지만 본인이 더 이상 예쁘고 매력적이지 않다면 그 질문을 던질 수(있는 권력이)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효리는 한 박자 앞서나가기 보다는 ‘반 박자’ 앞서나가고 그것이 대중의 인기를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잃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나는 삶에서 체득한 ‘경험으로서의 여성주의’를 믿는다. 특별히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지 않아도 그 삶 자체가 여성주의적일 수 있다. 나는 효리가 충분히 그러하고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케이블녹화현장에서 성형(정확하게는 성형하는 여성들)에 대해 묻는 mc의 질문에 효리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개인의 문제로만 얘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예뻐지고 싶게 만들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정적이 흘렀다. 당연히 본방에서 깨끗하게 편집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효리만큼이나 40대의 효리가 궁금해진다.
효리는 그 정적을 어떻게 돌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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