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결혼과 비혼 사이] 결혼, 별일없이 잘 지내고 있다
[결혼과 비혼 사이] 결혼, 별일없이 잘 지내고 있다
최영희(카티아) 여는 민우회 회원
우리가 결혼해서 살아가며 맞춰가는 소소한 이야기들, 뭐가 있을까? 결혼을 해서 달라지거나 변화된 것들에 대해 몇 일을 돌아봐도 잘 모르겠다. 무언가 적긴 적어야겠는데 막막하다. 다시 다시 찬찬히 돌아보자. 주제에 집중해보자. 함여원고요청 메일을 보고 또 봤다.
「흔히 결혼생활에서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많잖아요. 가사노동 분담이나 시집과의 관계, 상대방의 감정 배려 등등 그런 부분들을 카티아와 피노는 어떻게 맞춰가고 있는지 편하게 이야기로 풀어주세요」
솔직한 나의 답변은 배우자에게 불만이 없다. 그래서 나에겐 이 결혼생활이 특별할 것이 없는 것 같다. 결혼 후 가사분담을 따로 정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나도 피노도 서로 알아서 어느 정도씩 했던 것 같다. 한명이 식사를 준비하면 한명은 청소를 한다던가 내가 무엇을 해달라고 했을 때 피노는 늘 해줬던 것 같다. 우리의 가사노동 분담은 간단하다. 설거지, 청소, 식사준비, 빨래, 고양이 피노와 관련된 일들, 쓰레기 버리기 등등의 일들 중에 잘하거나 하고 싶거나 익숙한 일들을 영역없이 번갈아가며 한다. 피곤하거나 이유없이 하기 싫거나 할 때는 얘기하고 하지 않는다. 시집은 부산에 있다. 일년에 5회 미만으로 내려가는데 내려가면 반갑고 올라오기 바쁜 시간들이다. 결혼 초에 자주 전화하지 않는 걸로 어머니가 섭섭해 하셨지만 난 그냥 내가 하던 대로 했다. 결혼 전에도 부모님에게 자주 전화하는 자식은 못 되었던 터라 결혼했다고 저절로 되는 건 아니었다. (피노 역시 자주 전화하는 자식은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전화하기에 대해 이야기 하였고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노력해서 전화하면 할 말이 더 없어졌다. 내가 조용하니 상대편도 머쓱했다 그러길 반복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것들도 없어졌다. 그냥 전화가 오면 반갑게 받고, 내가 전화 하고 싶을 땐 하고 싶어서 했다고 말했다. 시집과의 관계도 별일없이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별일없이 그냥 잘 지내고 있다. 한 공간에서 뭉쳤다 흩어졌다하면서 말이다. 나는 함께 살고 있는 피노, 고양이 피노 모두 행복하다 느끼며 살아가길 바란다. 결혼 전에는 늘 입버릇처럼 독신으로 살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뭘 믿고 그리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는지 얼굴이 벌게진다. 피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이었다. 난 늘 여기 지구별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라고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생각하며 지냈었다. 피노를 만나 얘기하고 알아가며 외계인은 외계인을 알아본다고 바람냄새 가득한 피노가 좋았다.
사람들 모양이 다양하듯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의 모습도 다양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비혼의 모습이든 결혼을 해서 둘이건 셋이건 (더 많거나, 아니면 다시 혼자가 되어도)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할 것 같다. 그 안에서 외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말이다. 현재 나는 피노와 고양이 피노 이렇게 셋이 살아가지만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생명체가 태어난다. 그 생명체도 이 지구별에 불시착한 외계인일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살아가는 시간만큼은 즐겁길 바란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글이 또 내 얼굴을 붉게 만들겠지만 뭐.
그냥 우린 별일없이 이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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