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나의 노동이야기] 초짜 기간제, 혼돈의 카오스
[나의 노동이야기] 초짜 기간제, 혼돈의 카오스
권지현(귄) 여는 민우회 회원
기간제 교사는 교육계의 비정규직으로, 학교가 정원 이외에 정규직 교사의 휴직 혹은 학급의 감축을 우려하여 계약하는 형태로, 서울지역 고등학교의 경우 16.7%가 기간제 교사라고 합니다.
“충성하지 말라”는 충고
현재 나는 경기도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어 교사로 3학년을 가르치고 있다. 작년에는 3개월간 담임 업무를 맡았었고, 같은 학교에서 올해는 6개월 계약으로 특기적성부에서 방과후와 동아리 업무를 맡아 비담임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기간제 교사라는 건 휴직이나 병가 등을 사용하는 정교사들을 대신하여 정해진 기간만큼 일을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계약 기간은 정교사들의 휴직 사유만큼이나 다양하다. 나의 경우에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백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재계약은 휴직을 신청한 교사의 복귀 여부에 따라 우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간제 교사들은 불투명한 재계약 여부에 대해서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기간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기간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유명 포털 사이트 내에 있는 기간제 커뮤니티에서의 검색 결과는 기간제로 일할 때의 안 좋은 면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 계약할 때의 주의점부터 시작해서 과도한 업무량, 심리적 압박감 등을 털어놓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기간제로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도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았다. 재계약을 빌미로 기간제 교사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한다든지, 모두가 기피하는 힘든 업무를 분장한다든지, 명백한 행동보다는 모호한 말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준다든지 또는 기간제라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이 보내는 시선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들은 충고는 “충성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계약 종료와 속상함일 뿐이라는 거다.
어쨌든 잔뜩 겁을 먹은 채로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이미 각오를 했음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학교는 회사와 달리 한 번 맡은 업무를 수년간 이어서 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는 담임이었다가 올해 비담임이 될 수 있고, 비담임을 연속으로 한다 해도 부서가 바뀌면 담당하는 업무가 달라져 업무 파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3월도 내게 혼란 그 자체
전체 학사 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머릿속에 큰 그림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3월은 내게 혼란 그 자체였다. 개학과 동시에 각 교과별로 수업 진도, 평가 계획 등에 관한 협의를 하고 정해진 시수만큼 수업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행정 업무는 쏟아지는 공문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일과시간이 모자랐다. 게다가 학교 업무관리시스템의 인터페이스는 왜 그리도 복잡하던지...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도 모르는 초짜로서는 모든 교사가 정신없이 바쁜 학기 초에 누구든 붙잡고 순간순간을 해결해야 했다. 특히 방과후와 동아리는 학기 초에 준비를 잘 해 놓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더 정신이 없었다. 동아리 업무는 학생들과 교사들로부터 동아리 개설 신청을 받아서 동아리를 구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그렇듯이, 동아리를 구성하면서 학교의 모든 교사들, 학생들과 소통하고 협조를 구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마음이 참 힘들었다. 또한 본 교무실에서 방과후 업무는 교육청, 행정실, 각 학년부와 긴밀한 협조를 해야 하는 자리다. 특히 ‘자유수강권’이라고 불리는 지원금을 받아서 집행하고 현황 등을 보고 하는 일이 주요 업무에 해당된다.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이기 때문에 꼼꼼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교실로 들어가면 학생들이 있었다
학교 일이 버겁고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수업 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은 업무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자유 시간으로 여겨졌다. 온갖 공문과 숫자와 전화들로부터 도망쳐서 교실로 들어가면 학생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로부터 충분히 위안을 얻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영어 수업을 한다는 것은 수업 시간 내내 영어 지문 독해를 한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영어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 지문과 관련된 내용이나 지문에 나올 만한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이야기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 나는 여성의 날 행사에 처음 참석을 했고, 학생들은 ‘여성’이나 ‘여성의 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행사 관련 브로슈어를 참고해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에게 혹시 뉴스나 달력에서 3·8 여성의 날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지를 물어봤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거나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 게 아쉽다. 학생들에게 “얘들아, 어제가 무슨 날이었을까? 삼, 팔?”이라고 묻자, “선?!”이라는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던 게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한바탕 웃으며 넘어갔지만, 앞으로 똑같은 질문에 “여성의 날이요.”라는 대답이 나올 날을 기대해 본다.
나는 이제 6개월 계약 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휴직을 한 선생님이 연장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나에게 계약 연장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거절했고 학교는 새로운 사람과 계약을 했다. 짧은 기간 동안 학교 업무와 수업을 하면서 순간순간 온탕과 냉탕을 바삐 오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무엇을 더 원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 그 시간이 가장 보람차고 뿌듯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오래, 안정적으로 학생들 곁에 머무르기 위해 정교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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