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영부인도 가질 수 없던 것 : <재키>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 중 암살로 목숨을 잃었다.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그는 존 윌크스 부스에게 습격을 당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만다. 보통의 역사는 여기까지 기록한다. 대통령이 죽었고 그의 시대가 저문다. 하지만 대통령의 아내는 어떨까. 그래도 권력의 정점에 있던 남자의 부인이니 어련히 잘 살았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링컨의 사망 이후 아내인 메리 토드 링컨은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심지어 생계를 위해 가구까지도 팔아야 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전직 대통령에게 주는 연금은 미국에서 50년대에나 등장했다. 임기 중 정치력을 통해 쌓은 명망은 대통령의 것이지 그의 부인 것이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시대 남편 없는 보통 여성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즉 메리 토드 링컨의 사례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해하지 못할 만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녀만이 아니었다. 메리 이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린 죽은 전 대통령의 부인은 역사 속에서 종종 등장해왔다. 또한 아직도 여성이 양육과 가사 노동의 의무를 부여 받고 아내의 역할을 하기를 요구 받는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 속에서 여성들은 아무리 분투를 해도 남성만큼의 경제력과 사회적 자원을 얻을 수 없다. 유리 천장을 뚫는 것은 소수다. 그래서 젠더 없는 계급 분석은 한계를 지닌다. 상류층이건 중산층이건 여성의 계급은 남성(아버지 혹은 남편)을 경유해 획득된 경우가 많다. 그녀는 그 힘을 휘두를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는 없다. 의존적이고 불안정한 권력인 것이다.
영화 <재키>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 미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 영화는 재클린이 케네디 암살 이후 그의 장례식을 치르고 백악관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철저하게 그녀의 시점에서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이를 못 박듯 영화의 초반 재클린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기자에게 기사의 최종 편집권을 넘겨주길 요구한다. 처음엔 난색을 표하지만 결국 그녀의 요구를 수용한 기자는 소위 기사거리가 될 만한 사적인 이야기를 은근히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이야기는 절대 들을 수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다.
예상했겠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재클린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고지순하고 남편에게 충실한 퍼스트 레이디. 항상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는 순박한 여성. 영화 속 재클린은 그런 사람이기 보다 기자의 흘러가듯 던진 말도 파고들어 반박하는 날카로움을 보이는 인물로 묘사된다. 자신의 말과 기록이 어떻게 세간에 수용될 지를 명석하게 예상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냉소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왜 아니겠는가. 케네디의 아내가 되기 이전 재클린은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로 일할 만큼의 재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재클린인 순진무구한 인물일거라 예상했던 기자에게 그녀는 일갈한다. 자기는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이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인간 재키 사이의 간극은 영화 전반에 걸쳐 묘사된다. 가령 그녀가 남편의 유세에 함께하기 위해 텍사스를 찾는 장면을 살펴보자. 비행기에 내리기 전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모습을 가다듬고 행사장에서 할 연설을 준비한다. 삼등분으로 나누어진 거울 양 쪽에는 그녀의 얼굴이 절반 씩만 비추어져 있으며, 카메라는 재클린을 정면으로 잡는 대신 분할된 그 모습만을 비춘다. 심지어 그녀는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그 연설을 읊고있다. 그야말로 재클린이 얼마나 판이한 성격의 두 인물로 살아갔는지를 암시하는 장면이 아닐까. 심지어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파와 마주친 그녀의 얼굴을 코앞까지 다가가 담아낸다. 재클린이 지지자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와 아주 찰나 고개를 돌리며 혼란과 피로를 보이는 모습은 하나의 얼굴 속에서 공존한다.
그녀의 말처럼 모든 것은 연기였다. 그리고 사실 이는 남편인 케네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상 첫 대선 후보 TV 토론회가 그에게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이를 발판삼아 당선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가장된 것일지라도 삶의 일부가 되면 경계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클린은 고백한다. 어느 순간 이것이 연기인지 진짜인지 헷갈리게 되었다고. 다만 케네디의 경우 그 모호한 연기를 통해 얻은 것이 확실히 있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 거대 국가의 수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권력, 정치적인 명망. 하지만 재클린이 가진 것은 오직 남편뿐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재임기에도 케네디는 엄청나게 바람을 피운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그런 남편이었다면 재클린은 케네디를 다소 부정적인 인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인터뷰 내내 케네디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설명할 뿐이다. 또한 그녀는 남편이 죽음이 준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도, 장례식은 어떻게 치뤄야 할지를 고민하며 그 일에 유독 집착한다. 심지어 재클린은 암살 위험에도 모두가 만류하는 장례식 행진을 밀어 붙인다. 왜?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 자기가 가진 자리가 누군가의 아내 뿐인 사람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주인공일 수 있는 순간은 남편을 회고하거나 장례식을 이끄는 때 뿐이었을 테니까. 케네디를 얼마나 잘 포장하고 성대하게 보내느냐에 따라 재클린이 기억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영부인인 그녀가 대통령이 사라진 공간에서 유일하게 성취할 수 있는 역할이므로.
그래서 그녀는 케네디의 장례식을 앞두고 링컨의 아내를 이야기하며 스스로가 가난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보인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백악관이 자신의 집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재산 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아내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지위는 그가 죽음과 동시에 사라졌다. 어쩌면 영화 내내 백악관을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재클린이 공허와 혼란을 보였던 것은 그러한 정체성의 공백 상태를 예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영화가 담지 않은 그녀의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석한 재혼만을 기억하곤 하지만, 재클린은 출판 업계에도 진출했으며 활발한 저술과 자선 활동을 펼쳤다. 사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재클린은 영부인 시절에도 모금을 통해 독자적인 문화재 복원 사업을 펼칠 정도로 자신만의 업적을 쌓고자 하는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메리 토드 링컨처럼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스크린에서 늦게나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이야기도 만나고 싶다.
=====================================
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