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일상탐구생활 2. <몸의 시간을 나누는 행위>
15년이 넘는 동안 사진을 해오면서 나는 내가 던지는 시선만을 고민해왔다. 그런데 몇 년 전 사진치료 훈련을 받으면서 그동안 해 온 작업들의 이유를 찾게 된 후에는 개인에게 머물렀던 작업의 욕심을 내려놓았고 사진의 방향 또한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촬영해온 사진들은 나에게 과거의 상흔과 그로인한 결핍을 이미지언어로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었는데 그제야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던 셈이다.
어린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모부를 포함한 어른들, 그리고 그들이 구성한 가족, 가족이 있는 집, 이 존재들은 계속해서 나를 건드려왔다. 그들로 인해 발생한 치명적인 사건과 사고는 어린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남겨둔 채 내 안의 어두운 방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봉인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봉인하되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서 다른 모습들로 존재감을 드러내오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작업 해 온, 크나큰 상실감으로 시작되었던 재개발지의 ‘공가 시리즈’ 작업 또한 그 모습의 일면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재개발로 인해 마을주민들이 떠나고 비워진 집과 헐린 동네는 남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강제하며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 2013. HyeYoung all rights reserved.
괴로움과 외로움을 동반했던 사진치료에서의 강도 높은 직면의 시간은 그동안 외면해 온, 스스로 가려놓은 일부가 더욱 비대해져 상당한 크기로 몰아쳐 왔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감당한 이후 나와 주변을 이전보다 조금 더 잘 받아들이고 화해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다주었다(이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을 겪은 후 과거의 쓰디 쓴 경험들은 내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되어 공감할 수 있는 자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주요한 활동인 사진의 변화는 이전의 사진이 내 시선을 중심으로 상실된 공간을 기록한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공간으로서의 몸의 경험과 시간을 알아차리고 해석하고자 한다는 것. 그러므로 기울어진 지평 위에 놓인 여성들 고유의 몸의 경험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사진으로 접속하는 작업과 예술교육활동은 지금 내게 가장 주요한 활동이 되었다. 작년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작업한 첫사람 사진프로젝트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과 최근에 여성건강팀과 함께 한 임신중절 사진프로젝트 'BattleGround 269'가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촬영하는 자와 촬영되는 대상이 서로의 위치에서 주체가 되어 시선을 나눠 갖고 같지만 다른 몸의 경험을 이해하며 보이지 않는 지지의 기운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채워 촬영했던 약 백명의 몸들. 이 두 작업에서 만난 참여자들은 시선과 제도의 폭력이 더해져 전쟁터가 되어버린 몸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며 이제는 온전히 제 몸으로,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쥔 채 살아가고자 카메라 앞에 섰다. ‘너무도 당연한’ 이들의 메시지는 간절한 외침이 되어 전달된다.
첫사람 사진프로젝트 ‘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프로젝트 'Battle Ground 269'
© 2017. Womenlink & HyeYoung all rights reserved
이들의 분노, 간절함, 슬픔, 담대함 등 복잡한 감정이 함께 전달되는 사진들은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억압의 사회와 직면하겠다는 의지와 연대로 가능했다. 백명의 사람들, 백번의 순간들을 만나는 사진의 찰나와 함께하면서 나는 이들로 인해 백번의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연결될수록 강한 백개의 연결고리. 우리의 몸은 평화가 간절하다. 그 때까지 내 사진의 방향은 계속해서 숨겨진 몸의 이야기들을 향해 있지 않을까. 내가 필요로 했듯 몸의 이야기에 시선이 필요하다면 안전한 시선으로 함께하고 싶다. 또한 여성의 몸이 더이상 전쟁터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평화로의 방향전환이 가능하기를 바란다. #낙태죄를_폐지하라
*이 사진들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으로 도용, 복사, 배포, 판매가 이뤄질 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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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혜영 (민우회 회원)
프리랜서 사진가/예술교육가. 몸의 정서를 담아내는 사진작업과 교육활동이 가장 긴장되고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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