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소가 전하는 책 이야기] 수잔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 몇 해 전 부터 읽고 싶던 책이라 숙제하듯이 수잔 손택을 골랐습니다. 그 뿐인데, 난독의 즐거움이라고 할까요..어려웠지만 책 자체를 "성애적으로" 만나는 즐거움으로 족했습니다.
“당신이 쓴 모든 형태의 저술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문학과 사회죠.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수잔 손탁은 1933년 뉴욕에서 출생했다. 1951년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1954년 영문학석사를 1955년 철학석사를 받은 다음에, 손탁은 미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963년 그녀의 첫 번째 소설 《은인The Benefactor》이, 1966년 그녀의 에세이《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가 출간됐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그녀는 당대의 예술 흐름에 깊게 몰두하며 단호하게 반해석학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이 책의 '위험'을 일치감치 알아채고,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Marxism and Form》을 내놓았던 것은 유명하다.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Styles of Radical Will》(1969),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1977), 《우울한 열정Under the Sign of Saturn》(1980) 외에도, 그녀는 몇 권의 소설을 펴냈으며, 몇 편의 영화와 연극을 연출했다. 유방암이 발병한 이후 1978년 에세이인 《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이 출판됐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발전된 입장을 ‘현실세계’에 적용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뉴욕과 파리를 오고가며 살다가, 2004년 12월28일 백혈병으로 뉴욕에서 죽었다. 그때 당시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가 '여왕이 영면하다'로 제목을 뽑을 만큼, 뉴욕의 문화계와 사교계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녀는 또한 일찍이 전위예술(프랑스어: avant garde)의 나탈리 우드(Natalie Wood)로 불렸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체만큼 빈틈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2. 해석에 반대한다/ 스타일에 관하여
캠프에 관한 단상과 함께 일약 스타로 도약하게 만든 기념비적 작품. 주로 영화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까지 소설이나 다른 예술장르는 ‘해석’의 범람을 맞은 상황. 영화가 상당히 대안적인 존재로 나타났다. ‘해석’이란 단어는 니체가 말한 광의의 해석이 아니라 의식적 행위로서, 창조물에 대한 해석을 반대한 다는 것. 예술은 모방으로 평가절하(플라톤). 가치를 담은 내용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비평담론의 탄생 및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이 철저하게 자리잡았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
말이나 의미로 옮길 수 없는 해석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순수하고 관능적인 직접성’이 존재한다. 비평가, 지식인의 존재는 무가치 하다. 해석학이 아니라 성애학! 있는 그대로 상대를 탐구하듯이, 성애적인 행위로서 순수하게 나의 내면과 예술을 만나게 하라!
‘투명성’ 사물의 반짝임 자체를 경함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감증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된다. 비평가는 “예술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훨씬 더 실감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타일과 내용/ 형식과 내용의 이분법을 벗어날 것을 주장, 스타일과 스타일화의 구분을 통해 스타일의 부속적 지위에서 해방된다. 스타일이 곧 내용이자, 의미이다. 모든 표현은 스타일을 통해 구현되고 예술 그 자체가 스타일이다. ‘양식’, ‘주의’로 대체할 수 없는 것. 스타일화를 통해 아르누보 작가들은 내용에 대한 질식을 극복한다. “예술은 세상속에 있는 어떤 것이지, 말해주는 텍스트나 논평이 아니다.”예술은 유혹, 강간이 아니다. 예술과 도덕성은 불필요한 논쟁이다. 예술은 비평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의식’을 갖는 것.“스타일은 예술작품안의 결정원칙이요, 예술가가 자필로 서명한 의지다.”스타일화는 무엇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개입이고, 이 개입 자체가 스타일화이다.
3. ‘해석’에 관한 이야기(세여소와 함께 나눈 이야기)
- 홍상수 영화에 대한 ‘해석’적용하기
- 앤디워홀, 팝아트 / 민우회 연극 ‘아트’에 대한 ‘해석’작업
- 타인에 대한 해석, 소통의 과정. 묘사적인 어휘의 적용해보기,
- 리얼리즘과 반‘해석’적 태도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 반해석적 태도와 수용미학의 연결
4. ‘해석’을 위해(책에 자주 인용된 개념들)
캠프: 모든 것을 인용부호 속에서 본다. 여자가 아니라 ‘여자’로 보는 것. 존재를 역할 수행자로 이해하는 것. 인생은 연극적이라는 최대한 확장해 놓은 감수성. 도덕적 타당성 보다는 캠프적 감수성으로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 캠프가 되려는 그 대상의 시도를 지켜보는 것. 캠프적 표형“그건 너무 심해.”“너무 환상적이다” 등
잉마르베리만: 졸업한 후 연극계에 투신, 무대 연출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1944년에 알프 셰베리가 감독한 《번민》의 각본을 써서 영화계에 대뷔하였다. 1945년 《위기》에서 감독으로 진출하고, 뒤이어 《애욕의 항구》(1948), 《불량소녀 모니카》(1952), 《마술사의 밤》(1953), 《사랑의 레슨》(1954), 《여름밤은 세 번 미소한다》(1955) 등에서 눈에 띄게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처녀의 샘》을 발표함으로써 세계적인 대작가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베리만은 사실적인 영화로부터 출발하여 무대희극적인 작품을 거쳐 점차 '인간과 하느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엄연한 리얼리스트의 눈과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추상적인 사념을 갈라놓을 수 없게 융합하여 일종의 육감성과 정말로 북유럽적인 신비적 경향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1966년의 《페르소나》 등에서 보이는 베리만의 작품은 한층 추상적인 관념성이 강해져 가고 있는 듯이 보여 그 독자적인 영상의 세계는 더욱 순수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르누보: 19세기~20세기의 유럽, 미국에서 양식. 아르누보는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하여 예술을 수립하려는 당시 미술계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클림트나 토로프, 블레이크 등의 회화의 영향도 빠뜨릴 수 없다. 아르누보의 작가들은 대개 전통으로부터의 이탈, 새 양식의 창조를 지향하여 자연주의·자발성·단순 및 기술적 완전을 이상으로 했다.
로브그리예: 브레스트 출생. 파리의 국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기사가 되어 식민지의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1951년 문필활동을 시작하여 소설 《고무지우개 Les Gommes》(1953), 비평가상 수상작품 《엿보는 사람 Le Voyeur》(1955), 그 밖에 도전적인 소설론을 발표하여 ‘누보 로망’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초기의 작품은 사물의 철저한 시각적 기술로 이루어졌으나 《질투 La Jalousie》(1957) 《미궁(迷宮) 속에서 Dans le labyrinthe》(1959) 등에서는 사물의 시각적 묘사와 동시에 주관성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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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해석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명확히 해온 '정'때문에 그림자가, 배경이 되어 버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입니다. 생뚱맞게 세여소에서 읽은 책인데요, 그녀의 모순되고 과감하고 직설적인 태도에 매료됩니다. 한편, 그런 열정도 잠시....손탁이 말하는 해석에 대한 반대는, 모든 종료의 자기해석과 설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66년 근대정신이, 이성이, 지배하는 지식인의 권위로 가득찬 비평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작품을 읽어내며 권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벗은 몸으로 예술을 만나자는 것이 그녀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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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거 내가 위시리스트에 체크해놓은 책중인데!
함께하지못해서 아쉬워요 ㅜㅜ
한때 수전손택이 하는 얘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사진이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파는지에 대한 '타인의 고통'이란 책을 읽고 받은 작은 충격이 생각나네요. 그때처럼 어렵겠지만, 읽어보고 싶네요.
신기루 그때 하지 않았던 설명이 말미에 덧붙이니 한결 이해가 쉽습니다. 사회적으로 권위와 권력을 쥔 지식이 마음 껏 해대는 예술에 대한 비평 문화에 대한 반대 나아가 근대적 계몽주의록 가득찼던 합리주의 근대에 반대하고 "문제있습니다"를 외쳤다는 얘기지요? 각자 "벗은 몸"으로 "성애적"으로 예술 접하기. 따옴표 비평도 옹호 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