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시위 함께했어요
집회가 끝났다. 조금 전, 현수막 천을 양끝에서 잡고 가운데를 몸으로 밀어 찢어 나가는 길열기 행사로 3회 달빛시위가 마무리되었다. 청계광장에는 길게 찢어진 천들이 널려있고,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참여자들이 어수선하게 모여 초여름의 밤바람을 맞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던 천 한 가닥이 누군가의 손에 스륵 잡히더니, 와-하는 소리가 터지고 끈의 반대쪽에 팽팽하게 힘이 들어간다. 청계광장에 남아 있던 집회 참가자들이 줄에 우르르 붙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야밤, 여자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민소매 티를 입은 여자들의 무리가 도시의 밤을 왁자지껄하게 즐기는 한 풍경.
당신은 성폭력에 반대하십니까?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반대하느냐가 아닐까.“시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달빛시위는 정치적인 집회이면서 발랄한 축제이고 대중적인 캠페인이면서 참여자들의 놀이공간이다. 여자들이 밤거리를 누비고, 세상에 내지르고 싶었던 말들을 외치는 것이 정치적인 행동인 동시에 놀이가 될 수 있는 이유. 바로 여기에 달빛시위의 의미가 담겨있다.
올해로 3회를 맞는 달빛시위는 3년 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사가 미궁에 빠져 있는 동안 경찰과 언론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지 말라, 흰옷을 입지 말라며 여자들의 옷차림을 간섭했고, 웃어른들은 딸의 귀가시간을 단속했으며, 여자들은 밤늦은 길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좀 더 민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범죄자는 잡혔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새겨진 공포는 남았고, 여성이 자신의 몸가짐을 단속해야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범죄 예방을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통념들도 남았다.
‘밤늦게 집에 가는 길은 늘 공포의 연속이다. 나는 2분 간격으로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앞에서 누군가라도 걸어오면 그 사람의 성(性)을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만약 여성이라면 안도하지만 그게 남성이라면, 음흉하게 웃는 남성이라면, 더욱이 술에 취해 농이라도 걸어보려 하는 무리들이라면…’
-달빛시위에 함꼐한 민우회원 홍하이영의 후기 중-그래서 달빛시위에 모인 여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무엇이 여자들의 몸에 이렇게 공포를 새겨놓았는가? 어떤 옷차림을 하든, 밤에 돌아다니든 낮에 돌아다니든 여성의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밤길에 나다니지 않도록 간섭받아야할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을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위협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간섭하는 통념들이다. 우리에겐 안전한 밤길을 누릴 권리, 일상적으로 몸에 대해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여성의 몸을 위축되는 몸, 약한 몸으로 만들면서 오히려 여성을 보호한다고 큰소리치는 통념들을 거부하는 일은 그래서 정치적이며, 동시에 여성이 스스로 몸의 자유스러움을 찾아내고 즐기는 신나는 경험이다.‘늦은 밤 술에 취한 여성의 몸을 만지는 등 밤이 되면 더욱 활기를 띄는 남성들의 행태를 용기 내어, 그 경험들을 고발하는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화르르 자매>의 퍼포먼스는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었다.
그렇게 사전 마당이 끝나고 달빛 시위에 온 많은 사람들은 인사동에서 청계천까지 모두 4~5개 조로 나눠서 거리 행진을 했다. 나는 “달빛 아래 여성들, 몸의 권리 되찾다”를 외치며 청계천 지하도로를 행진하면서 사람들에게 리플렛을 나눠주었는데, 사람들은 우리들이 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관심 있어 했다. 종로의 그 긴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뀔 때 마다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달빛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라고 써져있는 현수막을 펼쳐는 장관을 연출하는 팀도 있었다. 그렇게 각각 흩어졌던 조들이 모두 같은 곳에 모였다. ”여자가 어디 밤늦게 돌아다니냐“는 둥의 여성을 간섭하는 말들이 적힌 현수막을 우리가 직접 뛰면서 찢는 퍼포먼스는 쫘악- 찢어지는 소리에서부터 밤에 여성에게만 작동하던 굴레들이 시원하게 찢기는 것 같았다.‘
-홍하이영의 달빛시위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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