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동행후기] 418호 법정에 들어서다!
2013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성폭력피해자 재판동행 지원단
햇볕이 뜨거워진 요즘, 재판동행 지원단의 '재판동행'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어요!
성폭력피해자 재판동행 지원단은 제도들이 실제 재판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여 체크리스트를 작성합니다.
6월~10월까지 동행한 재판모니터링 체크리스트를 취합하여 이후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 할 예정입니다. |
성폭력피해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지지하는
첫 동행 활동 후기를 '조제'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2013. 6. 4.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동행 후기
418호 법정에 들어서다
6월 4일 오전 10시 40분, 긴장되는 마음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8호 법정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6명의 재판동행 지원단 분들, 그리고 성폭력상담소의 모후아 활동가와 함께였다.
지난 5월 31일 성폭력피해자 재판동행 지원단 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동행하는 것이니만큼 재판에 지원단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떤 경험이 될지, 지원단으로서의 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됐다. 지난달 가정폭력 관련 재판(가정폭력 피해여성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을 방청한 적이 있어서 법정 자체가 낯설진 않았지만, 성폭력피해 재판은 처음이었고 지원단으로서 재판과정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 느낀다는 게 그때와 달랐다.
동행 전날 밤과 당일 아침에 법원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재판동행 매뉴얼을 이리저리 뒤적거려 봤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이날 나는 지원단으로서 값진 경험을 했다.
성폭력피해자의 법적 권리
<재판과정 모니터링 내용을 체크리스트지에 작성 중인 지원단 모습>
오후 2시, 증언에 관한 판사의 안내와 검사의 질문내용에 따라 증인(피해자)이 증언을 시작했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심각했다. 아니, 이렇게 표현하는 걸로는 전혀 그 상황을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증인의 공포스러웠던 기억을 들으며 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포일 수 있음을 느꼈다. 폭력에 언제라도 노출될 수 있고, 주변의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고립된 개인이 그 공포를 끝없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던 건 이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태도였다. 법조계 종사자들의 여성인권 감수성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고 이날 재판도 최소한 실망하지만 않으면 다행일 거란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이날 판사는 재판 내내 증언을 주의 깊게 듣고, 적절히 개입하며 재판을 잘 이끌어가고 있단 인상을 받았다. 오후에 검사가 증인(피해자)에게 질문할 때 증인이 질문 요지를 헛갈려 하자 그 내용을 명료히 해 준다거나, 증인(피해자)이 진술하는 중에 진술거부권(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을 고지해 주는 점, 오전에 출석한 또 다른 증인이 증언 중에 본 사건 피해자의 실명을 말하자 “증인, (이름을 말하지 말고) 피해자라고 말하세요.”라고 하며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 점들이 그랬다. 또 피해사실과 당시 정황에 초점을 맞춘 검사의 질문과는 달리 과거 데이트 관계였던 피해자-가해자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피고인측 변호인의 질문에 증인(피해자)이 기막혀 하자 이 질문들이 증인을 비난하는 게 아님을 명확히 하며 증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점도 그랬다. 전체적으로 판사는 고압적이라기보다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기다리는 느낌으로 재판을 이끌어 갔다. ‘이런 분위기로도 재판이 진행될 수 있구나’라고 느낀 날이었다.
결과는 과연?! 지원단 활동이 쭈-욱 계속되기를
물론 재판 결과는 어떨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 나만의 느낌일지 모르지만 이날 판사의 태도가 재판동행 지원단의 쪽수(!), 그리고 사방팔방 예민하게 움직이는 열 몇 개의 눈과 곧추세운 귀들을 마주한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폭력피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켜본다면 분명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 다음번 재판 동행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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