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_________에 있었습니다"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나는 _________에 있었습니다 :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약 50명이 7시간동안 용기있게 릴레이 발언을 하고, 공감과 응원 속에 경청되었던 필리버스터.
그날의 기록 중 일부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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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잔데 내가 무슨 여성혐오를 해? 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잔데 왜 내가 여성혐오자야?” 라고 하기 전에 한번만 더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여자인 저 또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일년전만 해도 저는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잖아‘ 라고 말하며 남자동기들의 술을 따라주었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옷, 남자들이 좋아하는 행동,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이 되도록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여성을 여성으로 규범화, 일반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여성혐오입니다. 자신만은 무결한 세상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열 여덟살. 두명의 나이든 남자들에게 속아 성인PC방으로 끌려갈 뻔 했지만, 친구의 기지로 살아남았습니다. 스물 하나. 트럭에 태워질 뻔 했지만 나는 왠지모를 안좋은 낌새에 거절했고, 그렇게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스물 다섯. 긴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새벽 1시경, 술에 취해 이상한 소리를 연거푸 내뱉는 낯선 남자가 두려웠지만, 그렇게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때 남자친구에게 연락하여 ‘저 사람이 나를 해칠까 무섭다’라고 했지만 그는 전혀 이해를 못하며 그냥 ‘늦었으니 어서 집에 가라’고 말할뿐이었습니다. 금새 깨달았습니다. 아, ‘남자’는 그런 일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영원히 겪을 일이 아니구나. 그래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저 타인과 한 공간에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미래가 처참하게 난도질당할 일은, ‘그’에겐 매우 높은 확률로 일어나지 않을 일인것입니다.
그는 그 불안감과 두려움과 불쾌감을 모를 것입니다. 몰라도 됩니다. 그런 일들은 그 누구에게라도 일어나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에게도.“
"이런 여성혐오 범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서 나오는 끔찍한 범죄들은 가중처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제도화하는 부분을 20대 국회에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첫 번째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이 사건은 개인적인 비극으로 잊혀져서는 안됩니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그 해법을 찾아가겠습니다. 다음주에 국회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 합니다."
"강아지에 목줄을 메고 공원 산책을 나가는데도 온갖 험한 말을 듣습니다. 어떤 아저씨들은 ’이렇게 큰 개를 공공장소에 데리고 나오면 어떻하냐‘고 고함을 지르기도 해요. ‘그렇게 큰 개를 왜 데리고 다니는거야?’ ‘쓸모도 없는 개는 집에다 메어나놓지 왜 그렇게 데리고 다니느냔 말이야!’ ‘여기 내가 다 쥐약 쳐놨어 들어오기만 해봐!’ 라는 협박까지 들은적이 있습니다.
알아채셨나요? 내가 산책을 하며 듣는 이런 험한 말들을 남자인 아빠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저희 아빠는 의아한 표정으로.. "응? 나 있을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거냐"라고 하셨습니다.”
""학교가는 길에 어떤 남성이 급하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돌려받은 휴대폰 창에 메모가 떠있는데 - '너도 운이 좋아서 산거야' 라고.
정말 너무 놀랐어요. 눈앞에 강남역 추모현장이 그려졌어요. 제가 그곳에 있는 느낌. 나는 정말 우연히 살았구나, 라는 걸 실감했어요.
'여자가 정말 약자야? 소수자야?' 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자리가 아니면, 우리는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제가 비둘기한테 한번 쪼인적이 있어요. 그 뒤론 비둘기만 봐도 피하고, 무섭더라고요. 한번 비둘기에 쪼여도 그런데, 성희롱, 성폭력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그 불안감과 분노가 얼마나 클까요? 남성들은 이런 경험이 낮설기 때문에 이해가 잘 안될거에요. 하지만 여성들의 경험과 감정을 알려고 노력해야 해요. 일단 말을 들으세요. 그게 시작이에요.
안타까운건, 여성혐오라고 얘길하면, 본인을 공격하는 말로 받아들여요. 왜 그럴까요? 육아문제를 얘길 하면, 그걸 공감하고 해결하기보다는, 별거 아니라고, 남성들도 가장 노릇하느라 힘들다고 해요. 본인이 왜 힘든줄 알아요? 남성들에게 짐을 얹히는건 결국 본인이에요. 같이 살아요. 남성분들, 제발 페미니스트가 되세요."
"10년 전 일. 12살때. 하지만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잊을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일. 저는 아동성폭력의 생존자입니다. 여름이고, 집근처 공부방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에요. 좀 어둑했어요. 근처 화장실에 갔는데, 술취한 남성 2명이 있었어요. 그 술냄새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서, 술을 못 먹어요. 한명은 커터칼을 들고 있었어요. 저는 제대로된 반항도 못했어요. '다행히' 저는 두번째에 도망쳤어요. 이게 정말 다행일까요? 지금도 생각해요. 저는 늘 이런 말을 듣고 자랐어요. 너는 엄마될 몸이야. 저는 착한 딸이었어요. 그래서 몸에 난 상처를 감췄어요.
저는 2차 성징이 빨랐어요. 그런 저의 몸이 밉고 싫었어요. 저의 여성성이 너무 싫었던 거죠. 가해자를 미워하기 보다 저를 미워한거죠. 저의 잘못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살갖을 드로내는 것도 싫었고, 밖에 늦게까지 있지 않았어요. 지금은 명확하게 알고 있어요. 이제는 늦게까지 밖에 있을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도 용기를 냈어요.
여러분의 시선에서 희망을 느껴요. 저의 이야기에 박수 쳐주시고 똑바로 봐 주시고.... 저는 피해자로서 동정받기 보다는, 생존자로서 존중받고 싶어요. 저는 정말 잘 살고 싶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동안 저의 얘기를 하면, 꼭 '왜 어두운 길을 갔어요?' 라는 말을 들었어요. 세상에 어두운 길이 하나인가요? 우리는 살면서 어두운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어요. 그 길들을 다 피해 걸어야 하나요? 그리고 그런다고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나요?"
"여성이 되는 일은 외부에서 옵니다. 첫키스, 첫 애무, 첫 포옹, 첫 섹스. 자취방 원룸이었고, 이불이 하나였기때문에 같이 덮었고, 손이 들어왔어요. 더럽고 싫다고 생각했지만 손은 브래지어로 팬티속으로 들어갔어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고, 오래오래 사랑을 나눌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이가 어떤 화장실을 들어갈지 걱정하지 않고, 검사하는 그런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래오래 용변을 보고, 손도 씻고 나오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폭력을 당하는 이유가 젠더 때문이라면, 저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에 이입하여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미웠습니다. 저는 가해자가 어떤 꿈을 꾸던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무슨 병이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왜 언론은 대체 왜 그들에게 이입하여 미래가 창창한 청년임을 왜 강조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나서서 할 때 꼭 제게 돌아오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 여자가 나서서 남자를 일반화 해! 너 혹시 인터넷 커뮤니티(메갈) 같은 거 하니?' 억울합니다 .저는 제가 안전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말들은 그저 비하하는 목소리들뿐입니다. 그럼 저는 다시 말을 합니다. 당신들은 더운 여름 날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 하나로 성추행을 당할까 걱정해 본 적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당신들은 밤 늦게 집에 갈 때 발자국 소리 하나로 겁 먹어 덜덜 떠는 몸으로 집까지 뛰어간 적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당신들은 학교 학원 피시방 식당 등 장소 상관없이 화장실에서 몰래 카메라에 찍힐까 얼굴을 가리고 일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늦은 시간 애인과 놀다가 잠시 나와 화장실에서 살인 당할까 걱정해 본 적 있나요?"
"친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남자친구가 일찍 일찍 다니라고 했다고요. ...무슨 이 말도 안 되는 일인가요? 일찍 일찍 다니면 안전하나요? 그럼 배달시켜서 집안에서 치맥 먹으면 안전한가요? 배달원이 성폭력 하는 것도 다반사고 자취하는 집에 괴한이 쳐들어오는 일도 너무 많은 걸요? 이게 내가, 여자가 조심해서 해결될 일인가요? 여자라서 위협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이 사회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2순위가 되고 대상화 당하고 성폭력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등한 인간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삶을 긍정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 같이 살아남아요."
"강남역 분향소에서 제 지인이, 한 남성이 붙이는 포스트잇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포스트잇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앞으로 여자들을 잘 보호하겠다' 이 일이 한 남성이 한 여성을 지키지 못해서 일어난 일일까요? 과연 한 남성이 한 여성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일일까요?
보호는 불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가능합니다. 내가 더 강하기 때문에, 약한 여성을 보호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보호할 가치있는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으로 나눕니다. 여성을 때려야할 이유는 넘쳐나지만 남성은 그렇습니까? 살인자는 말했습니다.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동등한 대상으로 본다면,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고 때리고 죽이고 혐오할 수 있습니까?
저는 남성으로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술에 취해 집에 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성집단에서 여성 혐오와 폭력이 만연하는 순간에도 침묵하곤 했습니다. 배제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 변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 끔찍한 상황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남성의 책임이 아닙니다. 모든 남성이 책임의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남성이 스스로 변할 때, 다른 남성들을 변화시킬 때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마세요.”
"저는 소위 말하는 "개념녀"로 몇 년을 살아왔습니다. 비싼 커피를 먹으면 된장녀야. 더치페이를 안 하면 된장녀야. 저는 어느새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데이트를 하면 무조건 분식집이나 순대국을 전전하며 편의점 음료수로 목을 축이는 "개념녀"가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개념녀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성관계도 곧잘 가졌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하자고 했기 때문에요. 저는 개념녀이기때문에 돈이 없어도 항상 데이트 비용을 반반씩 냈습니다. 저는 개념녀이기 때문에 남자 쪽에서 돈이 없다고 하면 제 쪽에서 지불했습니다. 저는 개념녀이기 때문에 고급식당에 가지 않았습니다.
불이 꺼진 고속버스 안에서의 성추행이 파다하던 시절에, 여자가 조심해서 앞자리에 앉으면 되겠지.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뭐라고 하면 되잖아?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추행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손짓을 하며 저를 보고 웃던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 한시간이 넘게 공포에 떨며 오던 그 버스 안에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고등학교때 강간을 당했다는 친구에게 위로한마디도 제대로 건네주지 못한 저를, 여성을 그저 성적욕구를 푸는 도구로 보는 피임약 광고를, 같은 여자임에도 저보다 순한 친구를 더 만만하게 보고 어떻게 한 번 해볼까 하는 남자를, 여자이기 때문에 당한 그리고 당하고 있는 온갖 차별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주변 여자애들은 성추행 경험을 이야기할 때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뭐, 그런 일이 있었지, 라는 느낌. 지나간 일이고, 어려서 뭔 일 당하는지도 잘 몰랐고, '이 정도야 다들 겪는 일이니까 호들갑 떨지 않을게. 더 심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잖아' 라는 느낌으로 말합니다. 성폭행은 여자들이 흔하게 많이 겪는 일입니다. 여자니까요.
작년에 공공장소에서 성추행을 당했는데 저는 그 순간에도 '겨우 이런걸로 경찰 부를 수 있나...이런걸 조사해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머뭇거렸고 그 사이에 범인이 도망갔습니다. 저는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느라 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인권을 말하면서도 저는 이 사회에 만연한 성폭행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성추행을 당한 순간, 몰카가 찍힌 게 아닌가 의심되는 순간, 누군가가 밤길에서 쫓아오는 순간, 당당하게 112를 누르지 못하고 '이런걸 조사해줄까? 별 일 아닌데 신고했다고 욕먹으면 어떡하지?'라고 고민하게 되는 심정을 압니까?
저는 사실 호들갑을 떨고 싶었습니다. 충격받았고 상처였다고. 무서웠다고. 우리의 피해 사실에 덤덤한 척 하지 맙시다. 여성들은 밤길을 무서워하거나 누가 뒤쫓아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구구절절히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변명해야하는 것은 여성들이 아닙니다. 맘껏 분노하고 표현하고 슬퍼합시다."
이처럼 당당한 발언들과 더불어
추모와 연대의 뜻을 담아 작은 공연을 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기타를 들고 장필순의 '제비꽃'을 불러주신 분도 있고
이날을 위한 자작곡 <Undead Sisters>을 부른 분도 계십니다.
마지막 참가자도 발언을 정리하며 크리스티나 아길레나의 리플렉션을 불렀지요 .
'자유롭게 날아가야 하는 마음이 있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숨겨야 해?
나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야' 라는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20분.
참여자들이 작성한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해 '나는 ㅇㅇㅇ을 할 것이다"란 문장들을 모아 외치는 것으로
이 날의 자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참여자들이 작성한 종이와 트위터 멘션으로 받은 다짐 전문은
여기 http://www.womenlink.or.kr/statements/18073 에 있습니다.
우리의 다짐들이 서로 지지받고 경청될 때
우리는 여성혐오와 폭력과 차별 없는 세상으로 조금씩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날 나오신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두려움과 고통을 거부하고 변화를 만들어가요.
민우회도 그 길에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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