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법무부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는 2018년에 걸맞는 정부를 원한다
[논평]
법무부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는 2018년에 걸맞는 정부를 원한다
2018년 4월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낙태죄에 대한 의견서의 일부가 지난 5월 23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큰 지탄을 받았다. 법무부는 곧 해명자료를 발표했지만, 다소 부적절한 표현과 부분 발췌로 인한 오해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 정도였다. 본 단체는 이후 해당 의견서의 전문을 확인했고, 법무부의 입장이 언론에 전해진 것 이상으로 문제적임에 경악했다.
법무부는 28쪽에 이르는 글로써 임신‧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며 성스러운 기적이자 축복이고,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임신 가능한 존재인 이상 ‘여성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 성관계의 결과인 임신‧출산을 감수해야 하고, 본인의 삶을 위해 그 임신을 중단하는 것은 ‘자유를 위해 생명을 제거하는’ 일이기에 허용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뿌리 깊은 성차별에 대한 법무부의 몰이해는 절망적일 정도다. 오랜 역사에 걸쳐 여성들은 위험한 방식으로든 상대적으로 안전하게든 임신중단을 실행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는 단지 ‘임신으로 목숨을 위협받아서’거나 ‘강간으로 임신해서’만이 아니다. 물론 ‘생명을 경시해서’도 아니다. 완전한 피임은 불가능하고, 여성에게도 아이 낳고 기르는 것 이외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의 사례가 증명하듯 임신중단을 처벌하면 임신중단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수술이 늘어날 뿐이다.
더욱이 피임부터 성관계, 양육에 이르기까지 재생산의 전 과정에서 평등과 인권보장은 실현된 적 없고 앞으로도 긴 시간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경우 아이를 낳아야 마땅하며 안 낳으려거든 여성 개인이 그 결과를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의 안전과 삶의 질에 대한 국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는 사실상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여성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법무부 의견서는 임신‧출산의 가치를 종교적이라 할 정도로 신비화하며 추앙한다. 그러나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나 생명존엄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을 창출하는 사회구조의 정당성과 적절성에 대한 검토로써 이뤄져야 한다. 특히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오히려 그 동안의 낙태죄 논의가 생명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옹호를 중심으로 수렴되면서 공회전해 온 역사를 인지하고 개선시킬 책임이 있다.
심지어 의견서의 상당 부분은 페미니즘에 대한 악의적 곡해를 담은, 좋게 봐야 ‘진지한 논의를 위한 합리적 사고력의 결여’로밖에 볼 수 없어 논박할 가치도 없는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다(미주 참고)1). 이처럼 졸렬한 글이 정부부처 그것도 법무부의 공식 입장으로 제출되었다는 사실이 여성 인권에 대한 법무부의 중요시 정도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우리는 국가가 여성이 겪는 현실에 무지하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과거 시대를 딛고 서 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는 존재이고 여성의 성관계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기 위한 것이며 임신의 인위적 중단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법무부의 관점은 구시대적이다. 낙태죄 역시 정확히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고 유지되어 온 구시대의 유물이다. 둘 다 그저 구시대적인 것을 넘어, 현 시대 시민들의 삶에 폭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열악한 현실은 과거 그대로이나, 여성들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의 법 감정은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낙후된 관점을 스스로 점검하고, 여성들의 분노에 책임을 통감하며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8년 5월 28일
한국여성민우회
1)
8p. ‘청구인 등과 같은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출산을 여성의 경제활동과 교육받을 기회를 침해하고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차별을 심화하는 객체 등으로 파악하고 있는바, 출산 그 자체가 가진 여러 의미들을 고려해볼 때 적정한 시각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10p. ‘엄밀한 수학적 계산에 따른 평등에서는 무차별화가 허용되는데, 이를 남녀 간의 평등에 적용시킨다면 남자는 여자고 여자는 남자라고 발하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남녀의 평등이란 남자는 곧 여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남자가 곧 여자가 되는 꿈이야 꿀 수 있겠지만, 남녀의 평등이 곧 남녀가 같다는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 청구인 등은 사회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의무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하나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므로, 이를 ’의무‘라고 보는 것이 과연 적정한지 의문입니다.’
13p. 주석: ‘청구인 등은 100% 완벽한 피임방법이 부존재한다고 주장하나 과학의 탐구대상이 예측불가능한 자연활동에 있다는 점을 보면, 과학의 영역에서 100% 혹은 0%를 만족하는 것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청구인 등의 주장은 성관계시 성병으로부터 100% 안전한 방법은 없으므로, 상대방에게 이와 관련한 고지의무(성행위 유무 등)를 법적으로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주장이므로 다소 무리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14p. ‘(임신중절 금지로 여성건강권 침해된다는 주장은) 흡사 네덜란드와 같이 대마 등을 합법화하지 않은 탓으로 더 위험하고 중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로 이뤄진 마약에 수요가 몰려 결국 인간의 생명과 신체에 더 위해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주장으로서 결코 적정한 주장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15p. ’여성차별철폐협약은 (...) 선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선언내용인 각 조항이 바로 보편적인 법적구속력을 가지거나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17p.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변화인 임신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인간의 의시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권리’라는 개념으로 포섭할 수 있는지 의문일뿐더러 과연 그와 같은 거부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신체의 완전성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나아가 청구인 등의 이와 같은 주장은 출산 후 영아를 유기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를 가리켜 출산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거부하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으므로 처벌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름없는 주장이므로 결코 타당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청구인 등은 남성의 기망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할 수 있으므로 낙태를 통해 위험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성행위가 아니라 그에 따른 생물학적 결과인 임신을 범죄의 목적·대상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일뿐더러 개인 간의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인 성행위의 동기·목적을 비롯해 결과까지 국가가 간섭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 역시 수긍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청구인 등의 위와 같은 주장은 자신의 의지조차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는 여성상을 전제한 것으로서, 지금까지 여권 운동으로 일궈놓은 여성상을 다시금 후퇴시킬 수 있는 주장으로도 보입니다.‘
23p. ’(...) 이과 같은 유전적 독립성을 무시한 채 단지 그 생존이 모체의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은 흡사 산소호흡기 등 기계 장치에 삶을 의존하는 환자도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생명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므로, 결코 수긍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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