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가 제안한 단시간 근로 '퍼플잡'은 여성노동자를 위한 대책이 될수 없습니다.
새해 첫날, 1월 1일에 상쾌한 마음으로 신문을 펼쳐 들었는데
오, 이런...
12월 31일에 정부가 출산과 육아로 일을 그만둔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대책을 발표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런 답답한 정책이 또 있을까요?
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4.7%로 OECD 평균(61.3%)보다 낮기 때문에
2014년까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60%로 끌어올리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데,
과연 현실성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지,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성부는 올해 여성이 일을 하면서 가정도 챙길 수 있는 유연근무제(퍼플잡·purple job) 도입을 다른 부처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확산시킬 계획
-여성부는 3월부터 시범적으로 시간제 근무 공무원을 채용해 공공부문에서의 유연근무제 확산을 선도해 나갈 방침. -직종이나 규모별로 유연근무 모형을 개발하고 인사·노무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민간 기업에 배포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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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단시간 근로 등 유연근무제를 확대해서
출산, 육아 때문에 일을 하다 그만둔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과연 정부 대책처럼
단시간 근로가 늘어나면, 아이를 기르면서 일도 하고 자아실현도 하고 먹고 살만큼 돈도 벌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민우회가 상담을 통해서 또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의 현실은
정부 대책으로는 개선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부의 대책이 시행된다면
단시간 근로의 특성상, 여성이 자신의 경력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아닌
보조 업무, 주변 업무로 배치될 것이 뻔합니다.
이러한 보조 업무는 구조조정 시기에 짤리기 더 쉽겠지요.
또 말이 좋아 '유연'이지
결과적으로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고 각종 사회보험제도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혼여성 4명 중 3명이 비정규직이에요.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고용했다가
필요없을 땐 짤라버리는 비정규직의 1번 타자가 여성노동자, 그녀들의 현실입니다.
정부 부처에 이런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도 모자랄 판에,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기관에서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일반 기업에 권장하고 비용까지 지원하겠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면
저런 허무한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일하는 현장에서 여성들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쓰기 힘듭니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또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 해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임신했기 때문에 일을 마음대로 못 시키겠다"
"임신부라서 술 접대를 할 수 없다"라면서 대놓고 해고를 하기도 하고,
육아휴직 뒤에 복귀를 하더라도 전에 했던 일과 완전히 딴판인 일을 주면서
자진해서 사직서 쓰라는 압력을 넣기도 해요.
대체인력을 구하지 않고
주변동료들을 힘들게 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당사자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임신, 출산을 이유로 부당해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장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야지"
"아이 키우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과 관행 때문입니다.
사장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음에도 법이 강제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 뿌리깊은 '성차별 관행'을 기준으로 법이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여성부 장관이라면
이미 경력이 끊긴 여성들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주는 방식 보다는
법에 보장되어 있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당당하게 쓸 수 있도록,
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치고 어떤 불이익없이
자신의 원래 자리에 복귀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고민할 것 같습니다.
'경력 단절 후 재취업' 보다는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을 단시간 노동으로 일하게 하려는 것은, 가족내 돌봄의 역할을 여성의 몫으로 또 다시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발상입니다. 때문에 돌봄노동을 사회화하는 일자리의 확대를 공공부문에서 확대시키는 방안이야말로, 여성의 경제활동율 참가율을 높이고 일하는 여성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것을 여성부는 인식해야 합니다.
여성부든, 노동부든, 국회든, 청와대든
불안정하고 차별적인 단시간 노동을 ‘퍼플잡’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기 보다는,
무엇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지를 인식하고,
처음부터 다시금 해결책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름도, 내용도
이래저래 도저히, ‘퍼플잡_단시간근로’는 여성노동자를 위한
길이 아닙니다.
2010. 1. 6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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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성명서였군요! 처음 성명서를 접할때는, 왜 모든 성명서는 똑같이 저런 부자연스러운 어조로 쓰여지는 걸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도 그 성명서 투에 익숙해졌더랬죠. 이 성명서를 보니 역시나, 이렇게 일상적인 말투로 써도 참 좋네요!
저도요!!! 더욱 공감한다는 말에 더욱 공감합니다.
딱딱한 언어보다는 바로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말해주는 듯한 느낌의 성명서가 저는 더욱 공감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