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로 처벌 받은 여성의 항소심 의견서
의견서
-'낙태'로 처벌 받은 여성의 항소심 의견서-
1.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법정의 수호를 위해 애쓰시는 재판부의 노고에 신뢰와 경의를 보냅니다.
2. 한국여성민우회는 1987년 설립하여 전국 9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없는 사회, 여성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실천적 성과를 만들어 왔습니다.
3. 한국의 낙태죄는 실질적으로 사문화된 법이었습니다. 형법상 낙태를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병원에 방문하면 낙태가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 시작된 낙태 고발 이후로 낙태 비용은 10배, 높게는 20배 이상 뛰었고, 심지어는 중국 등지에서 싸게 낙태하는 ‘원정낙태’라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또한 음성적 낙태 시술로 인한 범죄 발생율도 높아졌으며 여성들의 건강도 침해되고 있습니다.
4. 그 시기부터 본 단체에는 상담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안 돼서, 미혼이기 때문에, 남편의 반대로 낙태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유를 이야기하며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처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상당했습니다. 비용을 500만원을 불러서 중국에 가서 낙태할 수밖에 없는데 지원이 가능하냐는 여성의 상담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낙태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절박함을 일선에서 직접 마주하며 저희도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답답하기도 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부터, 본 단체는 상담 내용을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처벌 위주의 낙태 정책이 여성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진정을 내기도 하고, 남성간담회를 열어 낙태의 문제가 여성문제라는 초점을 넘어 남성이 겪는 고민과 갈등을 사회적으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모아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여성들이 언제, 왜, 어떻게 낙태를 결정하게 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와 속에서 낙태 문제가 피임 실천, 남성과의 관계, 육아 가능한 사회적 조건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책의 높은 판매율과 많은 전문가들의 서평, 관련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본 사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는 낙태 문제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이분법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현실에 대한 제고 필요성을 드러냅니다. 또한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하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의 차원으로만 해결했던 그간의 현실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5. 최근에 상담의 내용은 2010년~2011년에 오던 비용 문의나 처벌 문제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주로 전 남자친구나 전남편이 돈과 관계 유지를 위해 낙태죄를 빌미로 협박하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본 사건인 000 피고인과 상당히 유사한 사례였습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갈등이나 남성의 폭력으로 인한 파경 이후 남자 측의 낙태죄 고소 협박 건은 올해 들어온 상담중 80%에 해당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작년에도 주기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각 사례의 내용이 거의 흡사해서 저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 재판부에 호소 드립니다. 여성들에게 낙태를 했다는 낙인을 부과하여 같이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꼬리표로 협박하는 이런 사건들은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낙태죄가 실제 낙태율을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이중, 삼중의 죄와 고통을 부과하는 것이라면 사회정의와 인권의 수호가 되어야 할 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저희의 질문에 깊게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본 사건에서 여성이 낙태죄로 처벌받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아주 많은 여성들이 처벌대상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전 세대의 경우 출산조절정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종용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다면 누구도 이 문제에서 제3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낙태를 하게 되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원치 않는 임신의 문제일 것입니다. 결국 피임 과정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고 평등한 실천이 가능하게 하는 교육의 문제부터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낙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일 것입니다.
6.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 영국, 헝가리 등은 사회,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상담 절차를 걸쳐 여성이 신중한 결정을 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임신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프랑스는 올해 4월부터 낙태 비용 전액을 정부가 100%를 건강보험에서 지불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낙태를 더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 나라라고 해서 결코 한국보다 낙태율이 높지 않습니다. 이는 피임 교육부터 출산, 보육 정책까지 다양한 영역에 대한 정부 지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7. 본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공정한 판결은 낙태죄를 협박의 근거로 악용하는 문제에 대한 경고와 시사점이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재판부에서 사회정의 구현에 한 획을 그을 본 사건의 의의와 피고인의 억울한 정황을 감안하시여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6월 30일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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