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시대의 생명윤리
생명공학시대의 생명윤리
명진숙(여성환경센터 사무국장)
불임 부부에게 거액을 받고 난자를 팔기 위해 미 북동부 '아이비리그'의 여학생들이 캘리포니아주로 몰리고 있다. 활발한 불임 연구와 개방적인 문화 때문에 정자나 난자 매매가 흔하게 이루어지는 이 곳에서는 동부지역에서는 비밀인 난자 제공자의 약력과 사진 등이 공개된다. 미국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 다니는 한 여대생은 불임 중년 부부에게 1만 8000달러를 받고 난자를 팔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난자가 매매되는 세상
현재 대학신문에까지 난자를 중개하는 내용의 광고가 버젓이 실리고 있고, 지성과 미모를 가진 젊고 건강한 여성의 난자를 구해 달라는 요청으로 인해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대 등 아이비리그 여학생이 난자 거래상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새로운 신분 - 유전자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
빈센트. 행성 탐험이 꿈이지만 이룰 수가 없다. 태어나기 전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열성인자를 제거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왼손잡이고 눈이 나쁘며, 집중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30세 이상을 살기가 어렵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행성 탐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빈센트가 선택한 것은 유전자 거래상을 통해 우성인자를 가진 사람과 자신을 바꾸는 것. 돈으로 우성인자를 가진 사람과 계약을 맺고 철저하게 우성인간으로 행세를 한다. …(중략) 우여곡절 끝에 그는 행성 탐험을 떠난다.
난자 매매는 며칠 전 신문에서, 유전자와 관련된 내용은 '가타카'란 영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대생의 난자를 몇 백만원에 구한다는 광고가 버젓이 실리고, 많은 곳에서 유전자 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현재의 질병 진단이 아닌 예견을 목적으로 한 유전자 검사는 현재의 검사 기술과 질병이 발생하는 경로의 복잡성 등 미래의 질병 발생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검사의 결과로 료보험이나 취업에서 차별을 당한 사례가 보고되는 현실. 우리들의 혼란스러움은 더해만 간다.
최근 과학기술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생명윤리기본법(가칭) 기본골격'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한창이다. 생명과학기술이 생명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신장시키면서 건전한 발전을 하도록 돕는 것을 근본목적으로 한 생명윤리기본법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설치와 운영, 생명복제와 종간교잡행위, 인간배아의 연구와 활용, 유전자 치료, 동물의 유전자 변형 연구와 활용, 인간 유전체 정보 연구와 활용, 생명특허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중 제일 논란이 큰 부분이 인간배아의 연구와 활용에 대한 것이다. 기본법에서는 체세포 복제를 이용한 방법의 인간배아 창출을 금지하고, 불임치료 이외의 목적으로 체외수정 방법을 통해 인간배아를 창출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한편 불임치료 목적으로 체외수정 방법을 통해 얻어진 인간배아 중 잉여분을 이용하는 연구는 제한적 조건내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지난 22일에 열린 공청회 이후 우리사회는 인간배아 연구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국생명공학기술원을 포함한 생명공학계와 재계에서는 차세대 유망 산업인 생명공학을 육성하기 위해 인간배아 복제와 관련된 연구를 상당부분 허용해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하였다.
대부분의 언론역시 연신 "차세대 생명공학 산업 직격탄", "미래 외면한 생명윤리법" 등의 기사를 통해 기본법 시안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난치병 환자나 불치병 환자들의 미래가 인간배아보다 소중하다는 주장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체세포 복제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배아의 숨겨진 진실
그런데 인간배아을 둘러싼 논쟁속에서 제외된 부분이 있다. 바로 배아의 생산과 이를 둘러싼 여성의 고통이다. 현재 인공수정을 할 때 과배란을 유도하고 있고, 배아를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적게는 10만 많게는 50만 이상의 잉여배아가 있다고 한다. 불임치료 인구가 한 해 평균 8000명이라고 한다면 출산이라는 명분하에 얼마나 많은 잉여배아가 만들어지고 있는 가를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불임치료를 받으며 전신마취하에 고통스럽게 난자를 필요이상으로 채취 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난소암 발생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여성들의 고통은 생명공학 기술의 유용성에 가려져 있다. 난자의 생성을 전제로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기술 아래 여성들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생명윤리기본법(가칭) 기본골격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때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생명공학과 생명윤리를 이중적으로 구분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윤리를 강조하는 것이 생명공학 연구를 규제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사회적 합의장치로서의 윤리 강조는 생명공학 발달의 전제 조건이다.
둘째, 현재의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공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대부분 과학이 주는 편리함, 유용성에 익숙해져 있을 뿐, 연구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지, 연구 성과라고 하는 부분이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 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세계 최초의 연구"라면 앞 뒤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담론 마련이 필요하다. 생명윤리를 제대로 정립할 때, 과학기술에 대한 적용 및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상품화, 성의 상품화에 더 나아가 난자가 상품화되고 유전자로 차별받는 사회.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자율적으로 담당하기에는 버거운 사실들이 더 나타나고 있다.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이를 바탕으로 한 규제 장치를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권리와 의무일 것 같다.
2002.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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