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복지 의제발굴프로젝트]릴레이수다회3 <시간>후기
| 10년 뒤 한국 여성의 행복을 상상하다 |
성평등복지 의제발굴 프로젝트 릴 · 레 · 이 · 수 · 다 · 회 | ||
#3
"내가 사는 시간과 살고싶은 시간" | ||
세번째 수다회에는 야근 없는 삶을 꿈꾸는 7명의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쁜 우리의 일상에 대한 증언과 내것이지만 내가 짜지 않은/짤 수 없는 시간표 안에서 몸도 마음도 축나는 시대의 한숨들 그리고 이어진 짧고 묵직한 질문들을 전합니다. 참가자 나리맛탕의 세계최초(응?) 만화 후기도 기대해주세요! |
2012년 대한민국, 나의 하루
"이번 주에 일한 시간이요? 보통 아침 9시 출근해서 저녁 9시 퇴근. 하루 평균 12시간이네요."
"지난 직장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이틀은 야근을 한 거 같아요. 9시나 10시. 그래도 지난 직장은 그 전 직장에 비하면 나은 거였어요."
"남자 직원들은 일찍 퇴근 안하려는 분위기도 있어요. 집에 가면 집안일을 분담하거나 아이나 부부간 서로 돌봄에 참여해야하는 압박이 있으니까 그냥 회사에서 시간보내는 게 낫다는 거죠. 저는 빨리 퇴근해서 내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하는 게 좋은데. 남자 상사들이 뭐 할 일있어? 이러면서 늦게까지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에요."
"야근을 안하면 일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죠. 왜 이 팀은 야근이 적을까~? 이런 느낌."
"야근수당이 있는 회사는 오히려 야근을 못하게 하죠. 일은 야근해야 할 수 있는 분량인데 야근하려고 하면 이래저래 눈치를 주니까 결국 집에 싸가서 10시 11시까지 하는거죠."
"어떤 회사는 토요일에 회사 나오라고 말은 안하지만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놔요. 마감이 그날까지야 하고 떨어지는데 그럼 토요일에 안 나올 수 없는 그런 상황인거죠."
"시스템 점검을 하는 IT업계에 다닌 적이 있어요. 낮에는 고객사들이 시스템을 사용 중이니까 일은 주로 밤에 하거든요." "그럼 출근시간도 늦어지고요?" "아니오. 새벽 4시 5시에 퇴근해도 출근은 9시 반 10시."
"대기업 다니는 친구 말이 자기 시간은 자기 시간이 아니라 팀장의 시간이라고."
"저는 연차를 악착같이 다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들리는 얘기가 다들 7-8일 정도만 쓰는데, 쟤는 10일 다 썼다고. 나는 이게 흉거리가 될 줄은 몰랐어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국제암연구소에서 심야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대요. 납이나 자외선이 2급 발암물질이거든요."
"사람이 아침에 눈뜨고 저녁되면 쉬고 밤이면 잘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취미생활에서 생의 에너지를 얻거든요. 근데 계속 야근이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진짜 심란하더라고요. 내가 회사일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출근하면서 여행사에 전화할 때도 있어요. 비자 문의하면서 진짜 확 가버릴까 그러면서 지하철 타고 가다가 막상 회사 앞에 도착하면 그래, 일을 해야지 먹고 살지."
"새벽 3, 4시에 퇴근하면서 며칠을 연달아 일을 하다가, 어느날도 3신가 4신가에 집에 들어갔는데 배가 너무 아픈거예요. 병원가니까 장염이라는데, 그래도 아침에 다시 출근을 했어요. 일이 너무 많으니까 출근을 안할 수가 없는 거에요."
"일 그만둔 친구들 만나면 몸이 다 탈이 나있어요. 허리수술 한다고 하고. 한 동안 못일어 나기도 하고. 회사 다닐 때는 바빠서 정신이 없다보니까 몸 상태조차도 잘 모르다가 더 이상 못버텨서 그만두고나면 한꺼번에 오는 거예요. 저도 회사 다닐 때는 항상 어깨가 아프다는 느낌만 있었는데, 그만두고 나니까 아예 입이 안벌어져서 한참 병원 다녔어요."
"여름휴가 갈 수 있어요?" "아니요. 정신차려보면 올해가 가있을 것 같아요."
"전 직장에 있었던 상사는 일을 너무 잘하고 너무 열심히 해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그 속도를 맞추려니까 팀 사람들이 다들 알레르기에 비염에 아토피에... 애 있는 후배는 애 분리불안이 심해져서 결국 그만두고. 그러다가 결국 상사 본인도 퇴근길에 쓰러져서 실려갔어요. 나도 다른 회사로 옮겼고요. 일을 잘하긴 잘했는데, 그게 일 잘하는게 맞는 건가 싶죠."
"팀원들이 다 일하는 꿈을 꾸는 거에요. 두통 달고 살고, 복통이 너무 심해서 병원가보면 이상없다고 하고. 위가 쿡쿡 수셔서 찍어보면 깨끗하다고 하고. 스트레스 때문이란 건 다 알고 있고. 10명 중에 10명이 앓는 이 스트레스. 거의 조선시대 천민인 기분이예요. 사회를 움직이고는 있는데 받는 건 없달까."
인간을 기를 수 없는 시대
"두번째 육아휴직은 정말 부담스럽죠. 회사가 육아휴직을 당연히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는 곳인데도 내가 휴직하는 동안 일할 사람 구하고 휴직 전후로 일에 무리가 가는 걸 저도 겪어봐서 아니까 부담이 되는 거예요." "육아휴직으로 생기는 업무지연이나 속도 조절이 당연히 발생하는 일의 한 과정인건데, 육아휴직을 안써도 되는 사람의 생산성에 생산성 표준이 맞춰져 있으니까 결국 개인이 이런 부담을 지게 되는 것 같아요."
"큰 애가 5살이고 둘째가 8개월인 간호사인데 월급이 괜찮은 보건소가 있어서, 전문직으로 커리어도 쌓아야 된다 싶어서 애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시작한 거예요. 근데 결국 두세 달 일하고 그만 뒀어요. 거기가 수시로 야근을 하니까 8시인가 퇴근을 하는데 그 시간에 어린이집에 뛰어가면 애는 울고있고 선생님들은 지친 표정이고.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그만둔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7말 8초에 쉬니까 어린이집도 그 때 쉬고 애들 학원도 그 때 쉬고 그러니까 애가 있는 사람들은 그 때밖에 휴가를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비수기에 휴가를 쓰면 하루씩 더주는 분산휴가제라는 게 있다는데, 어차피 아이와 시간을 맞출 수 없거나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면 해결이 안되는 거잖아요."
"장시간 노동하는 분위기에 맞춰서 어린이집도 그렇게 운영하라고 하는 것도 해답은 아닌 것 같아요. 부모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게 모두에게 더 좋은 방법 아닐까요."
"시부모님 댁에서 독립해서 귀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럴려니까 육아가 해결이 안되는 거예요. 그나마 시부모님과 같이 사니까 애가 있는데도 일을 할 수 있거든요. 애가 좀 아프기만 해도 어린이집에서는 다른 애들까지 아플 수 있으니까 안 받아주는데, 이럴 때 봐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는 엄마들은 미칠 노릇인 거예요. 애 있는 제 친구들도 보면 전부 다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 근처에 살거나 같이 사는 거죠."
이 열차의 행선지는 어디일까
"전 이 직장에서 6년차예요."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었어요?" "그게요, 갈 데가 없어요. 여기 그만두면. 그만두고 출퇴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할 용기가 안나요. 나이 드니까 다음 직장이 안생길꺼라는 불안도 크고. 이런 게 해소되려면 그만둔 다음을 준비하고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직장 다니면서는 하루하루 일하는 것만해도 바쁘니까요. 그렇게 6년이 지난거죠."
"이제 100세 시대라는데, 젊을 때 이렇게 혹사하듯 일하다가 늙으면 잉여 취급받는 식의 생애주기가 맞나, 한 사람의 삶을 놓고 노동이라는 게 어떤 의미와 양과 위치여야 되는지, 전사회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100세 시대에 모두 허망해질 지도. 더구나 의료가 발달해서 아파도 잘 죽지도 못할텐데. 가난하고 아픈데 죽지도 않는, 그렇게 사는 시기가 길어지는 거면 누가 행복하겠어요."
"원래 직장생활하면서 돈 모아 카페를 차리고 싶었는데. 그 결심은 이미 6년 전에 했는데 준비할 시간이 없으니까, 잠자기도 빠듯하니까, 계속 꿈인 상태로 있습니다."
"노후를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니까 돈만 모으는 거에요. 무작정 돈을 모아야 하니까 노동시간이 늘고 일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질 수 밖에 없고. 악순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4시간을 마음대로 짜볼 수 있다면? 나는 일하는 시간을 빼서 살림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집에서 물밖에 안먹어도 컵 7개가 쌓이잖아요. 어차피 해야하는 살림인데, 자기를 돌보는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난 잠을 2-3시간 더 자야겠어요." "회사 그만두고 까페차릴 계획 세워야 하는 거 아니고?" "일단 지금은 잠이 더 급하니까."
"하루에 4시간만 일했으면 좋겠다. 방학도 있었으면 좋겠고. 아니면 주4일제만 되도! 중간에 수요일날 한숨 돌리고 가는 걸로."
"외국 거래처에 컨펌을 요청하면 그거 하는데 우리 회사에선 2시간도 안 걸릴 그런 건인데, 자기들은 컴펌하는데 5일은 시간을 보장해줘야한다 그러거든요. 일의 속도가 달라요." "근데 2시간 볼 껄 5일 보면 큰일이 날까?"
"일이 바쁜 거는 그만큼 돈을 많이 버는 거잖아요. 돈은 버는 것만큼 사람을 더 뽑으면 되요. 근데 왜 안 뽑죠?"
"이건 한 회사가 아니라 전 사회의 속도가 달라져야 하는 문제예요."
"노동에 쩔어 살아서 그런지 정작 놀 시간이 있어도 뭘해야할지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3일 휴간데 2일만 쉬고 그냥 출근하는 경우도 봤어요. 노동 중심적 사회가 어떤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되는."
"노동이 당연한 사회, 야근이 당연하고 바쁘지 않으면 바보고. 이런 분위기가 너무 팽배해 있어요. 몇십년을 오로지 일만 해야하는 삶. 사람마다 인생의 시기마다 시간이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왜 이렇게 일을 죽도록 하면서 살아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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