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복지 의제발굴 프로젝트]릴레이수다회4<프리랜서의 시간>후기
| 10년 뒤 한국 여성의 행복을 상상하다 |
성평등복지 의제발굴 프로젝트
릴 · 레 · 이 · 수 · 다 · 회 | ||
# 4
"경계 밖의 시간여행자들" | ||
네번째 수다회에는 남들과는 좀 다른 시간표를 살고 있는 4명의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이름하여 프리랜서
주5일, 9 to 6, 휴가, 은퇴같은 단어들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인 것 같지만 사실 전일제 직장인 집단에 한정된 키워드라는 것을 알게해준 프리랜서들의 시간에 관한 수다
그 내용을 [프리랜서 시간 용어 사전]과 참가자 신치의 담백한 후기로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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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실용적인
프리랜서 시간 용어 사전
프리랜서
(명 사)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예 시
1.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6년차. 삽화회사와 출판사 직원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밤새 그리다가, 야근이 당연한 삶을 살다가, 이럴바에는 차라리 싶어서, 결정적으로는 사장이랑 뜻이 안 맞아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업.
2. 프리랜서 영화감독 12년차. 영화 편집실에서 2년간 매일 새녁 4시까지 필름통을 여기로 옮겼다가 저기로 옮긴 다음 다시 여기로 옮기며 40만원 정도 월급을 받다가, 영화계에선 나름 라인 잘 탔다는 편집실이긴 했어도 상업영화만 다루는게 영 마인드가 안 맞아서, 독립영화 감독으로 전업. 하지만 생계는 커녕 제작비를 따로 벌어야 하는 직업이라 촬영관련 이런저런 알바 병행 중.
3. 프리랜서 기고가 7년차. 마감하고 한 시간 뒤에 또 마감을 치는 잡지사에서 열혈 취재하고 기사쓰고 기획하다가 회식자리에서 여직원들을 옆에 앉혀 폭탄주 말고 브루스 추던 상사와의 배틀이 인권위 제소까지 이어지면서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섬. 현재 동시 진행중인 일만 여섯개.
4. 프리랜서 1인 기업 4개월차. 5년 동안 다닌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그 다음 1년간 이런저런 회사 5군데를 갈아타다가 갑을관계는, 특히나 을이 되는 건 성격상 안맞다고 결론 내리고 프리랜서로 전업. 1인 기업으로 아이디어 기반 문화 사업들을 런칭 중. 생계는 원두 영업과 주말 까페 알바로 유지.
프리¹
(명 사) 프리랜서에게 있는 프리
예 문
"프리랜서 장점은 아무래도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프리랜서니까 아무래도 남들이 놀 수 없는 그런 시간에 놀 수 있는 게 좋죠."
함 정
"근데 사람 많이 없는 평일에는 어디 놀러를 가도 문을 안 열어요. 전 그래서 결국 남들 다니는 때에 다니게 되더라고요."
프리²
(명 사) 프리랜서에게 없는 프리
예 문
"일이 좀 틈이 없어요. 하루에 다섯 가지 자잘한 일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야 하기 때문에."
"앗싸 끝났다하고 나가려다가 수정해달라고 전화오면 해줘야하고, 빨리 해줘야 하고"
"시간 강사인 친구가 하는 말이 출퇴근시간 딱 정해져있지 않아서 자유로울 것 같다고 하지만 자기는 자꾸 시간이 조각조각 나는 상황이라 훨씬 더 시간에 얽매이는 기분이래요. 하루에도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마감이 하루에 두 개 있으면 이거 하다가 이게 더 급하니까 이걸 또 했다가 이런 식. 훨씬 더 바쁘고 정신없고 시간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느낌이라고."
순 화 하 기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짜볼 수 있다면, 청탁이나 마감 전화나 이메일로 부터 자유로운 시간이 하루에 한 나절정도만 있으면 좋겠어요.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일을 주는 사람 전화를 안받기가 힘들거든요.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의해서 시간이 기획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속도랑 내 기준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나절 정도만. 사실 제가 밤에 일하는 것도 밤에는 전화 신경 안써도 되고 그나마 좀 조용하잖아요."
시간규범
(명 사) 규범 밖으로 나가야 보이는 규범
예 문
"출퇴근 시간이 없다 보니까 평일 낮에도 동네에 자주 출몰하게 되는데, 그럼 노는 사람으로 보거든요"
"저도, 동네 슈퍼마켓 아줌마가 물어보진 않으시는데 뭔가 눈치가. ^^ 근데 안 물어 보니까 저 노는 사람 아니고 사실 일을 하고 있고 지금 마감하느라 너무 바쁜데 잠깐 짬내서 뭐 사러왔다 이렇게 설명할 수도 없고. 어느날은 동생은 뭐하냐고 물어보셔서 외국에 취직해 살고 있다고 했더니 그러게 요즘은 둘째들이 오히려 자리를 잘 잡는다며 ㅎㅎ"
해 례
"다들 정해진 시간대에 출근하고 퇴근하는게 마치 규범처럼 되어 있으니까. 사실은 그런 사람들 못지 않게 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일제 9 to 6 노동이 시간 규범이 되어 있는 거네요"
휴식
(명 사) 근로기준법과 회사내규가 없는 경우, 시간과 돈의 반비례 함수에 의해 결정됨
예 문
"처음 프리랜서 시작했을 때는 휴가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불안하니까. 돈이 쌓일 때까지는 휴가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 주변을 안떠나고. 그러다가 역류성 식도염이... 근데 프리랜서 기간이 쌓이다보니까 바뀌었어요. 이거 끝나면 가야지, 끝나면 배워야지 했던 것들을 그냥 하자는 쪽으로 바뀐거죠. 휴식 먼저, 그 다음에 일. 그리고 주말은 꼭 쉬기"
"근데 일이 겹치면 밥먹을 시간도 없었는데. 바쁘면 집에서도 서서 먹게 되요. 키보드 앞에 두고. 키보드 털어보면 마른 멸치가 막 나오고."
어 원
"놀려면 시간과 돈이 둘 다 있어야 하는데. 프리랜서는 그럴 확률이 희박하죠.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왜냐하면 일이 없으니까. 돈이 많으면 바쁜 시즌인 거니까 시간이 없고."
시간 관리
(비슷한 말) 수입 관리
예 문
"전일제 직장인들은 사실 일없이 멍때리고 앉아 있어도 하루가고 월급이 쌓이는데, 프리랜서들은 그런 건 없죠."
"한 건에 6백이다 7백이다 해도 그 한 건이 6개월 7개월 걸리는 일이면 월로 따져보면 얼마 안되잖아요. 이렇게 계산이 되면 시간이 곧 돈이니까 같은 일도 한 시간 덜 들이면 그만큼 돈을 더 버는 효과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작업 효율성을 높이려고 은연 중이든 일부러든 고민을 많이 해요. 짧게 끝날수록 유리한 거고 더 쉴 수도 있는 거니까."
해 례
"프리랜서도 취약한 것 중 하나가 페이를 알아서 올려주는 경우도 없고, 인상에 대해서 어필을 하면 다른 사람을 쓰는 거죠. 좀 더 젊고 새로운 것 찾고. 그러니까 내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페이에 대한 협상이 어려운 조건이라 결국 자기 시간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페이를 높이는 거네요?"
은퇴
(동의어로 헷갈리는 말) 55세, 60세
예 문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직장인에게 있는 시간 개념인 것 같아요. 저는 은퇴 이전과 이후라는 식으로 시간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게 오히려 나를 위한 노후 투자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가끔 생각하는 게, 좀 더 나이들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체력적으로 못할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될까. 그때는 정기적인 월급을 원할 것 같고 그런 일을 필요로 할 거 같은데, 결국 취업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저에게는 은퇴인 것 같아요."
해 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은퇴도 중요하고 일하지 않는 여가시간도 중요한데, 그게 일하는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유예하는 시간이라는 기분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하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 내가 목말라 했던 시간이 미뤄지는 것 같은 거죠. 근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쨌건 내가 하고 싶은 그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그 시간에 가까워지기 위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그 만족감이 현재에 있다는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노후
(명 사) 미래를 지칭하는 말로 주로 쓰이지만, 알고보면 현재를 대하는 관점을 드러내는 말
(비슷한 말) 불안, 막연함
예 문
"프리랜서 되고 초반에 너무 불안하니까 다달이 적금도 넣고 그랬는데 그게 또 불안요소가 되는 거에요. 수입이 불규칙한데, 고정지출을 욕심껏 늘려놨으니까. 펜도 제일 싼 모나미만 사고, A4지 한박스 사놓으면 되는데 그걸 굳이 한 묶음만 사놔가지고 급해 죽겠는데 문방구가야 되고, 정말 일하는 데 필요한 거조차도 아껴서 쓴 거예요. 그러다보니 사람이 강박증도 생기고. 그런데 어느 순간 적금을 줄이고 지금의 나한테 돈을 쓰고, 여행가고, 책 같은 거 필요하면 사고, 그렇게 나한테 투자하는데 오히려 노후준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해야 하니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병이 나면 안되는 거거든요. 아프면 일도 못 하니까."
응용 예
"노후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면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하는 생각이 언젠가는 나도 폐지 줍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같은 거요. 불안은 한데, 구체적으로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상 자체가 잘 안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도 결국 나를 불러주는 데가 없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이는데. 요즘은 은퇴가 55세도 많이 봐준 분위기니까. 어떠세요?"
"근데 그 폐지 줍는 게 다 도시광산인데. 화석연료 고갈되면 결국 그게 노다지."
"그럼 폐지 줍는 할머니들끼리 도시광산 협동조합같은 거 해도 되겠다~"
"프리랜서면 월급이 없는 삶이니까 불안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히려 정규직들 보다 불안이 훨씬 작은 느낌이에요. 정규직이라는 규범이랄까 레일같은 것이 있고, 그 레일 안에 있을 때는 그 밖의 삶이 굉장히 불안해 보이고, 그래서 그 레일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더 애쓰며 살고. 여자들이랑 은퇴나 노후 이야기하면 다들 폐지 줍는 할머니 떠올리면서 불안함을 느끼는 걸 확인하게 되거든요. 폐지 줍는 할머니는 결국 그 레일 밖으로의 낙오를 상징하는 어떤 장면같달까.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는데 결국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그런데 그 레일 밖에서 실제로 불안을 직면하고 대처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폐지줍는 할머니를 봐도 그자리에서의 삶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것같아요. 그런 면에서 규범적인 생애주기 밖에 있는 삶이 가지는 파워풀함이 느껴진달까."
후 기 by 신치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대구 여행 이후 프리랜서의 장점인 자유를 마음껏 활용해
주중에 하루는 꼭 국내로 여행을 다니겠단 결심을 페북에 올렸다.
그 글을 올리고 나서 민우회에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란 키워드와 관련해 프리랜서들과의 좌담회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들의 좌담회'라. 새로운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나는 가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좌담회에서 이미 오랜 시간 프리랜서로 살며 겪은 찐한 경험들을 들으며
'프리랜서에게 돈과 시간은 반비례'라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 공감하기도 하고,
앞으로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고민해 봐야 할 것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좌담회 중에 프리랜서의 장점인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음'에 매우 공감했다.
현재 내 삶에 비추어 보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스스로 매우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 하는 시간을 100으로 봤을 때, 20 정도만 실제로 '돈'이 되는 일에 사용하고 있어서,
여유와 삶의 만족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면서 나머지 80의 시간 중 얼마를 돈이 되는 일에 투여해야 하고, 그 투여한 시간에 얼마를 벌어야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이 생겼다.
좌담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던 것도
'돈과 시간이 반비례하는 프리랜서의 삶'이었다.
일이 한꺼번에 몰려, 하루 1-2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일을 하게 되면 돈은 쌓이지만 무언가 다른 여유를 찾을 시간이 없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일이 없다는 것이므로 그 여유를 즐길 때 사용할 돈이 없다는 것 말이다.
하루아침에 끝날 고민은 아니고 계속 시간과 돈의 밸런스를 생각해야 할 것같다.
대화가 마무리되면서,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작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 이후, 단 세 달만이라도 좋으니 살고 싶었던 이태리의 작은 시골 마을 '루카'.
생각해 보니 당시에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이태리, 루카, 자연 등 보기 좋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어떤 공간이 아니라
'자유'였던 것 같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내 멋대로 살고 싶은 자유.
5월부터 본격적인 프리랜서의 삶이 시작되면서, '이태리 루카의 삶'에 대한 동경이 사그라들었는데,
그건 아마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자유를 현재 발딛고 서 있는 이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찾았고,
지금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이제 막 시작한 프리랜서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좌담회에 함께한 오랜 시간 프리랜서로 살아 온 분들의 얘기를 듣고,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고정된 수입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 때문에 지금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월급이란 마약에 다시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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