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105번째 세계여성의날, 지구에서 있었던 두가지 일
올해도 38 세계여성의 날이 돌아왔어요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시위가
2013년 한국의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지금은 너무 당연한 '여성참정권'이
105년 전 3월 8일에는 '노조원들이나' 외치는 거리의 구호였던 걸 보면
오늘 우리의 피켓에 적힌 문구들이 100년 뒤 여성들의 삶의 풍경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념일은 기억하기 위해 만든 날.
105년 전 여성들의 목소리와 오늘의 나 사이의 연대를 기억해보는 건
역시 38이기 때문.
38이라서, 봄이라서, 삼월 둘째주 민우회는 이런 사건들을 벌여 봤어요.
1_당신의 38페이지를 펼치다
3월 4일 홀연히 웹에 등장한 두번째 민우액션위크 예고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주의 영감을 얻게 된, 당신의 그 책 38페이지를 함께 읽고 싶습니다.
당신의 38페이지에는 어떤 글귀가 담겨 있나요?
당신에게 여성주의 영감을 준 책을 오랜만에 찾아
38페이지를 펴고 마음을 여는 문구를 sns에 올려주세요"
그리고 기다림의 설레임이 가득한 타임라인에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 38페이지들
그런데 너는 너의 비밀을 남편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니? 아이구, 그럼.(No! Never!)
-<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_승쨩님의 38페이지
누군가가 설명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고 세상을 설명하는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매혹적이다.
-<오빠는 필요없다> 전희경 _Maru Han Lee님의 38페이지
이브가 뱀(지혜)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딸 때 아담의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하지 않고 아담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브는 남자를 괴롭히고 타락시킨 존재가 아니라 모험심, 능동성, 주체성을 지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일곱가지 여성콤플렉스> 여성을위한모임 _오서방님의 38페이지
모든 젠더 주체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쩌면 젠더는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허무는 무대 위의 공연 행위이고, 법의 무의식에 반복 복종하면서 재의미화에 열려 있는 타자를 안고 있는 가변적 주체이다.
-<젠더트러블> 주디스버틀러 _나영님의 38페이지
때로 괴물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적절한 성역할을 수행하고있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를 가르는 경계에서 구성되기도 한다.(...)혹은 정상적,비정상적 성적 욕망 사이에서 그 경계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여성괴물> 바바라크리드 _제이님의 38페이지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어떤 이야기가,/ 어떤 인생이,/ 어떤 시작이/ 아름답게 시작되는 것은 무엇일까/ 쓰러진 흰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_바람님의 38페이지
트위터에 게시된 38페이지 더 보러 가기 (#여성의날_38페이지)
페이스북에 게시된 38페이지들
달꿈님은 민우액션위크에 참여하며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남겨주셨네요.
"오랫만에 책장에 있는 책들을 꺼내 38페이지를 요리조리 찾아보았어요. 사실 가장 영감을 주었던 책을 꼽으라면 대학시절 <여성주의 저널 n> 이었어요. 지금은 발간되지 않지만, 당시에 활발했던 n 활동과 모임들은 늘 흥미진진했고 숨통을 틔어주었죠. 그게 페미니즘과의 첫만남이었어요. 당시 발간되었던 저널 n은 아직도 고이 보관하고 있는데, 오랫만에 꺼내서 다시 읽으니 새롭네요.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구요. 덕분에 즐겁네요 : )"
당신의 38페이지에는 또 어떤 역사가 담겨 있나요?
2_Happy Women's Day!
3월 8일 오전
날씨는 화창하고 때는 38이라
뭔가 재밌는 일 벌일게 없을까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회원팀 활동가들
결국 동네 한 바퀴를 나섰어요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건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이웃 여성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
축하선물로 여성시인의 시 한편을 준비했어요.
누가 너를 꽃이라 부를까
농염도 은밀도 없이
성큼 담장을 올라서는 꺠박이 얼굴
네 뜨거움을 감당할 아무도 없다
네 씩씩한 육체 홀로
노란 불갈퀴의 순수
태양을 마주 선 담담한 얼굴
착하고 아름다운 꽃들
고요하게 모가지를 잘린 채
소리없이 안겨 숨질 때
다발 다발 묶일 수 없던
소박데기 내 어머니처럼
너는 꽃의 숙명을 넘어
내숭한 유혹도 향기도 떨쳐버린
자존으로 당당하다
나아가 먼저 사랑하고
홀로 가득 열매 맺어
뜰 앞에 온갖 새 부르던
가장 나중엔 가장 꽃다운 꽃
슬퍼하지 않는 네가 좋다
-장정임 <해바라기>
마을 곳곳 활동가들의 단골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망원시장에도 갔지요
호떡을 사러 갈 때마다 자리를 비워서 매번 기다리곤 했던 망원역 골목 호떡집 아주머니께
시장 모퉁이 전집의 기름 냄새 고소한 불판 앞에
물고기처럼 웃음이 기운 찬 생선가게 아주머니께
개업한 지 얼마 안된 동네 미용실의 들뜬 공기에
동네 할머니들 둘러앉은 뜨게질 가게의 느긋한 오후에
시 한편과 축하인사를 전했어요
사실 들떠서 동네로 나오긴 했지만 막상 불쑥 인사를 건네려니 부끄...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우리의 축하를 기쁘게 받아주셨답니다
웃는 얼굴을 환대하는 자연스러움!
덕분에 활동가들은 점점 신이 났답니다
"소비자과 판매자로만 만났던 관계가
활동가와 시민으로, 여성과 여성으로 달라지는 새로운 경험"
이었다고 한 활동가는 이날의 소감을 전하네요
그럼, 올해는 여기까지.
105번째 세계 여성의 날, 봄볕 좋은 망원동의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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